최석진법조전문기자
전·현직 간부들의 자녀와 동생 등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해 고발당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선관위원들을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에서 수사하게 됐다.
이번 사건의 고발인인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15일 "노태악 위원장 등 선관위원 전원 감사원법 위반 혐의 고발 시건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에 배당돼 수사에 착수했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 2일 위원회의를 열고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 국회의 국정조사나 국민권익위원회의 감사는 수용하겠지만,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의원은 지난 4일 노 위원장과 선관위원 전원을 감사원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이 의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특별감사위 발표에 따르면,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 총무과장 등이 자녀의 채용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며 수사 의뢰를 했고, 국민의힘 이만희·전봉민 의원이 선관위로부터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4명의 퇴직 간부 자녀들이 '아빠 근무지'에 특혜 채용된 것으로 드러났고, 친동생이 선관위에 경력 채용된 사실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안이 매우 엄중하고 국민적 공분이 커 감사원은 지난달 31일 선관위를 대상으로 채용·승진 등 인력 관리 전반에 걸쳐 적법성과 특혜 여부를 정밀 점검하기로 결정했지만 피고발인 노태악 등 선관위는 '그동안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다. 이에 따라 직무감찰에 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선관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며 감사원의 감찰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선관위의 선거관리 업무는 행정사무에 해당하므로, 실질적으로 행정기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라며 "감사원은 2016년과 2019년에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이 의원은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채용비리에 대한 감사는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감사원법 제51조(벌칙) 1항은 감사원법에 따른 감사를 받는 자로서 감사를 거부하거나 자료제출 요구에 따르지 않은 사람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한편 선관위는 선관위가 헌법상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헌법 제97조는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정하고 있다.
선관위는 선관위가 법률상 기관이 아니라 헌법 제7장에 따로 규정돼 있는 헌법상 기관인 만큼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 대상인 행정기관에 선관위가 포함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이번 감사의 대상이 회계검사가 아닌 소속 직원의 비리, 즉 직무에 대한 감찰인 만큼 선관위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도 있다.
감사원의 감찰 사항을 규정한 감사원법 제24조를 둘러싸고도 양 기관은 서로 큰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감사원법 제24조(감찰 사항) 1항은 감사원의 감찰 대상으로 ▲정부조직법 및 그 밖의 법률에 따라 설치된 행정기관의 사무와 그에 소속한 공무원의 직무(1호)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와 그에 소속한 지방공무원의 직무(2호) ▲제22조 1항 3호 및 제23조 7호에 규정된 자의 사무와 그에 소속한 임원 및 감사원의 검사대상이 되는 회계사무와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직원의 직무(3호) ▲법령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위탁하거나 대행하게 한 사무와 그 밖의 법령에 따라 공무원의 신분을 가지거나 공무원에 준하는 자의 직무(4호)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면서 같은 조 제3항에서 '제1항의 공무원에는 국회·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소속한 공무원은 제외한다'고 감찰 대상에서 제외되는 예외 기관을 명시하고 있다.
감사원은 감사원법에서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관은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3곳이기 때문에 선관위는 감찰대상에 당연히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1994년 감사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선관위를 제외 대상에 넣지 않기로 최종 결정된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입법 미비'라는 입장이다.
두 기관은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 과정에서 불거진 '소쿠리 투표'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직무감찰 수용 여부를 놓고 충돌한 바 있다.
한편 선관위는 감사 거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 9일 다시 위원회의를 연 뒤 전·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선관위는 "감사원이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의 고유 직무를 감찰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헌법에 대한 최종해석 권한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애초 수용 의사를 밝혔던 국민권익위 조사와 관련해서도 권익위와 갈등을 빚고 있다.
권익위의 선관위 채용 비리 전담조사단 단장을 맡은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관위가 현장 조사에 응하지 않고 비협조적인 자세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정 부위원장은 "오늘 오전 중앙선관위와 17개 지역 선관위에 현장 조사를 나갔는데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 수용을 이유로 권익위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 측은 권익위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지만 감사원 현장조사 기간이 권익위 조사 기관과 겹쳐 조사 시기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