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선기자
인지과학자 존 매카시는 1955년 록펠러 재단에 "다트머스대에서 10명의 과학자가 모여 인공지능(AI)을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인간만 다룰 수 있는 문제를 풀고, 스스로 발전시키는 기계를 만들고자 한다"는 내용의 편지 한 통을 보냈다. AI 용어는 '다트머스 제안서'라고 불리는 이 편지에서 처음 등장했다. 67년이 지난 2022년, 존 메카시의 열망은 현실이 됐다. 오픈AI의 생성형 AI 챗봇 챗GPT를 통해서다. 챗GPT는 대규모 언어 학습을 통해 대화와 코딩 등을 수행하는 생성형 AI다. 인간과 비슷한 대화 기술을 선보인 챗GPT는 AI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챗GPT의 등장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생산하는 엔비디아를 시가총액 1조 달러 회사로 만들었다. 미국 소프트웨어업체 오라클의 주가 급등으로 창업자 래리 엘리슨 회장은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4위 부자에 올랐다. 세계는 현재 AI 기술 패권 전쟁 중이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AI 기술 시장에서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기술력 수준이 높은 만큼 잠재력이 큰 국가로 꼽힌다. 한국의 AI 산업을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바야흐로 기술 황금시대다. 챗GPT 등장 이후 AI가 인류 문명과 산업을 흔드는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빌 게이츠는 오픈 AI의 AI 챗봇 챗GPT에 대해 "1980년 이후 최고의 혁신 기술"이라고 말했다. 전체 산업의 방향이 AI를 중심으로 바뀌고, 기업은 그것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몇점일까.
AI 기술력 보유 기업 10곳 중 6곳은 우리나라의 'AI 경쟁력' 성적이 'C 학점(70점)'이라고 평가했다. 기술력은 세계 유수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만, 한국 독자 생태계 구축은 아직 초기 단계라는 게 이유다.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도 한국에 대해 "AI 생태계의 리더가 될 자질을 갖춘 국가"라고 진단했다.
세계 AI 시장을 주도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변화해야 할 점이 많다. 우선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 차원에서 투자와 정책 지원도 미미하다. 아시아경제가 선정한 50개 AI 전문 기업에 '한국 산업 진단'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한국 AI 기술 경쟁력 점수는 70~80점이 전체의 63%로 가장 많았다. 이어 50~60점(14%), 30~40점(12%) 등의 순이었다. 세계 AI 시장에서 한국이 뒤처진 영역은 투자, 정책, 인력 등이 꼽혔다.
한국은 전체 AI 투자 규모가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스탠퍼드대학교가 최근 발표한 'AI 인덱스 리포트 2023'을 보면 지난해 한국 민간기업의 AI 투자액은 31억달러(3조9000억원)로 6위에 그쳤다. 미국이 474억달러(60조6000억원)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중국(134억 달러·17조1000억원), 영국(44억 달러·5조6000억원), 이스라엘·인도(32억 달러·4조원) 등의 순이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와 같은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도 국내에선 찾기 힘들다. MS는 내부 AI 개발팀의 연구 성과 대신 스타트업 오픈AI의 GPT를 자사 제품에 넣었다. MS는 오픈AI에 110억달러(14조3000억원)를 투자했다. 구글도 AI 업체 앤쓰로픽에 4억달러(5000억원)를 투자했다.
편향된 투자도 문제다. A 기업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AI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선 기술을 사람들에게까지 실제로 도달시킨 기업에 이목이 쏠려야 한다"면서 "아직 국내 AI 생태계는 제대로 된 기업을 선별하는 힘이 약해 단순히 알리는 것에만 특화된 기업들에 자원 집중이 편향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인재 풀도 부족하다. 미국 연방정부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AI 대학원 설립에 약 1조원을 투자했다. 중국은 5년간 500만명의 AI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AI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고 유망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유치하는 데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반도체, AI 분야 학생을 1년에 1000명씩 각각 1년 1만 명 정도는 석박사로 길러내야 겨우 유지가 되는 데 정부 예산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AI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AI 관련 교육과정을 확대하고, AI 분야에 전문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부도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 AI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과 학계,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B 기업 관계자는 "산업과 학계 간의 협력을 통해 실제 문제에 대한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부는 적절한 정책과 지원을 제공해 AI 산업의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C 기업 관계자는 "초거대 AI는 아직 미완성 기술이라 여전히 실수가 많은 데 실수에 대한 수용성이 높지 않은 사회 분위기 그리고 정치권에서 규제중심의 움직임도 어려운 점"이라며 "글로벌 IT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체계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AI 기술혁신에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AI는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변호사 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똑똑하기도 한다. AI의 발전·보급은 사람들의 업무환경과 일자리를 바꿀 수 있다. 실제로 'AI가 창출한 일자리는 무엇인가'라는 항목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엔지니어(32%), 컨설턴트(24%), 윤리정책전문가(19%) 등이 꼽혔다. 'AI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에는 번역가(41%), 사무 행정직(25%), 고객 상담사(16%) 등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챗GPT를 '인턴'으로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이활석 업스테이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회사 내부에서는 챗GPT를 '인턴'이라고 부른다"며 "보통 인턴에게 기대하는 요구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5년 후에는 3년 차 직원 정도 수준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AI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에는 전문성보다 AI 활용 능력(30%)과 창의력(29%)이 높은 인재를 택한 기업이 많았다.
설문조사 대상에는 3월부터 AI 독자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을 소개하는 기획 'AI혁명'에 참여한 기업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기업은 삼성전자, LG, 한미반도체, 카카오브레인, 삼성SDS, LG유플러스, LG CNS, SK C&C, 스마일게이트, 업스테이지, 엔씨소프트, 윈큐브마케팅, 셀바스AI, 네이버, 넥슨, 스픽, 라온, 플루닛, 넷마블, 바이브컴퍼니, 뷰노, 솔트룩스, 라이너, SKT, 씨앤에이아이, 벨로크, 로완, 세컨신드롬, 다락, KT, 아티피셜소사이어티, 포자랩스, 휴런, 시큐센. 에이아이메딕, 가우디오랩, 옴니어스, 지란지교데이터, 파수, 플리토, 마이리얼트립, 뤼튼테크놀로지스, 라이언로켓, 엠로, 비트나인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