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불황 돌파]②늘어나는 대기업의 ‘코스닥 쇼핑’

경기 침체 전망에도 코스닥 상장사 대상 M&A 활발
미·중 갈등 따른 공급망 재편, AI 발달에 변화 속도 빨라져
2차전지·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에 관심 커져

편집자주정부와 금융당국이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정비하고 구조조정 활성화도 추진한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 한계기업이 속출하고 기술 개발과 설비투자 등이 부진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침체했던 M&A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장기 불황 우려에 몸값을 낮춘 매물이 나오고 있고,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 등에 따라 사업 재편의 기회를 노리는 대기업·사모펀드 등이 고금리 상황에서도 인수자로 나서고 있다.

올해 초 삼섬전자와 삼성SDS가 코스닥 상장사 지분을 인수하면서 코스닥 시장 인수·합병(M&A)에 관심이 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매수에 나선 것도 예전 지분 전쟁과 달라진 사례로 꼽힌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공급망 붕괴,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따른 '탈세계화' 등은 기업의 투자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회 변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코스닥 상장사를 비롯해 중소기업 M&A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한 코스닥 시장 상장사는 총 21개사다. 2022년 9개사, 2021년 8개사가 같은 기간 주식양수도 계약 공시를 한 것과 비교하면 올해 경영권 변경 상장사가 늘었다.

삼성전자·삼성SDS 등 연초부터 코스닥 상장사 지분 확보

지난해 10월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2 로보월드'에서 협동로봇이 전시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삼성SDS는 지난달 15일 공급망관리전문 솔루션 업체 엠로 지분 33.4%를 111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했다. 엠로는 자체 AI 기술로 핵심 자재 수요 예측과 재고 관리, 최적 견적가 자동 분석 등을 제공한다. 삼성SDS는 엠로를 인수하면서 구매 공급망관리 영역에서 특화 솔루션을 확보했다. 황성우 삼성SDS 대표는 "엠로와 힘을 합쳐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통합 공급망 플랫폼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1월12일 590억원을 투자해 협동로봇 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 신주 194만주(지분율 10.22%)를 취득했다. 경영권을 확보하는 M&A는 아니지만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율을 60%까지 높일 수 있는 콜옵션도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6일 레인보우로보틱스 경영진이 보유 중인 주식 일부를 장외에서 추가로 취득했다. 보유 지분율은 14.99%로 높아졌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윤준오 삼성전자 기획팀 부사장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해외 진출을 위해 미국 일리노이주 숌버그에 법인을 설립했다.

삼성전자는 높은 기술력을 확보한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협력해 해외 로봇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제조 현장에서 노동력 부족이 이어지는 가운데 협동로봇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 내 협동로봇 비중은 2018년 5%에서 지난해 13%로 높아졌다.

금융투자업계는 엠로와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확보한 기술력이 삼성그룹의 브랜드와 해외 네트워크 등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레인보우로보틱스 협동 로봇을 활용한 삼성그룹의 자동화 추진, 미래 로봇 기술개발 협력의 두 가지 이유에서 투자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한다"며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 공급 실적을 확보하면서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보유한 로봇 하드웨어 기술에 삼성전자가 보유한 소프트웨어, AI 기술이 더해져 미래 로봇을 개발하는 협력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급망 재편에 기술 내재화 위한 M&A 증가 전망

투자은행(IB) 업계는 엠로와 레인보우로보틱스 사례를 통해 대기업의 M&A 전략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자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M&A로 기술력 또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글로벌 M&A 트렌드'를 보면 M&A는 경제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둔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매력적인 기업가치에 따른 기업인수 최적의 기회가 도래하는 시기다. 2차전지, 전기차, 소재·부품·장비 업종에서 M&A가 활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PwC가 글로벌 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경기 둔화기에도 M&A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컸다. 설문에 응한 CEO 10명 가운데 6명은 M&A를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현금이 풍부하고 공격적인 성장 목표를 세운 기업은 M&A 기회가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솔그룹이 인수를 추진 중인 대보마그네틱도 이런 트렌트에 부합한다. 배터리 전자석탈철기(EMF) 업체 대보마그네틱 매각 주관사 삼정KPMG는 인수적격 후보로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산은·유진프라이빗에쿼티(PE), 한솔제지 등 4곳을 선정했다. 대보마그네틱은 자석을 이용해 원료에 함유된 철을 제거하는 전자석탈철기(EMF)를 제조하는 업체다. 2차전지를 제조하려면 탈철작업이 필요하다. EMF를 활용하면 2차전지 양극 소재에 함유된 미량의 철(Fe)을 PPB단위(10억분의 1)까지 제거할 수 있다. 2차전지 시장이 커지면서 EMF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LS전선은 지난 3일 KT서브마린 주식 629만주를 449억원에 사들였다. 기존에 들고 있던 504만주에 더해 지분 43.68%를 확보하면서 KT서브마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해저 케이블 시장 4위 업체인 LS전선은 KT서브마린 지분을 인수하면서 시공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LS전선의 해저 케이블 제조 기술과 KT서브마린의 시공 기술, 선박 운영 능력 등이 결합해 해외에서 수주를 늘려갈 것으로 기대했다.

탈세계화에 따른 공급망 재편 이슈도 코스닥 상장사에 관심이 커지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과 중국의 분쟁이 격해지면서 미국은 신규 공급망과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이전까지 공급과 수요 법칙에 따른 효율성이 기업의 공급망 구축 원칙이었으나 앞으로는 지정학적 이슈를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과거에는 국내 중소 기업이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기업에 밀려났지만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있는 중소기업은 새로운 공급망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반도체와 2차전지 부문에서 소재·부품·장비 업체에 대한 M&A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IB업계 관계자는 "환율·금융비용 상승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M&A는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필수 부품과 원료 관련 M&A는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기업 M&A로 경제 전반의 회복력을 높이겠다며 규제를 개선하고 전략적 M&A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혔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업 M&A는 경영 효율화를 위한 주요 수단"이라며 "M&A로 새로운 기술과 인적자원을 비교적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는 공개매수, IB의 기업 신용공여, 합병 등 기업 경영권 시장의 불합리한 규제를 정비하기로 했다. 아울러 M&A를 위한 유동성 제공, 기업구조조정 수단 확충 등을 통한 M&A 방식의 기업구조조정 활성화도 추구한다.

증권자본시장부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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