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프로젝트로 순식간에 뇌 스캔한다

IBS 연구팀, 고속 촬영 기술 개발

국내 연구진이 영화 상영하듯 뇌에 빔프로젝터를 쏴 뇌 연결 지도를 만드는 고속 스캔 기술을 개발했다. 치매 등 퇴행성 뇌 질환이나 약물중독 치료 기술 개발에 활용될 전망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김성기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장 연구팀이 빔프로젝터로 패턴화한 광유전학 자극으로 살아있는 마우스의 대뇌 피질 활동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의 전체 영역을 스캔해 뇌 연결 지도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31일 밝혔다. 이 연구에는 최명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뇌 기능은 뇌의 각 영역 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뇌의 각 영역의 연결성(Connectivity)을 이해하는 것은 뇌 기능 연구의 출발점이다. 광유전학(Optogenetics)은 글자 그대로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한 것이다. 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특정 세포에 빛을 감지할 수 있는 단백질을 발현시키고 빛을 이용해 세포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특정 영역의 뇌세포 활동을 조절해 단일 뇌 영역과 전체 뇌 회로 및 행동 간의 인과적 관계를 연구하는 데 널리 사용된다. fMRI는 뇌 전체의 활성을 스캔해 광유전학적으로 유발된 특정 뇌 영역의 활동에 의한 뇌 전체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광유전학 fMRI는 침습적 수술로 뇌의 목표 영역에 광섬유를 삽입하고, 이를 통해 빛을 전달하여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뇌에 예기치 않은 손상을 입힐 수 있다. 하나의 실험 개체에 많은 광섬유를 삽입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때문에 수많은 뇌 영역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많은 수의 실험동물이 필요했다. 또 뇌 영역 간 연결성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 실험 개체 간 차이를 통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팀은 기존의 광섬유를 삽입하는 방법 대신 마우스의 대뇌 피질에 직접 빛을 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때, 마우스의 두개골 때문에 빛이 침투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개골을 치과 수술용 드릴을 이용해 얇게 갈아내고, 약품을 처리해 뇌가 들여다보이도록 두개골 윈도(Thinned-skull Cranial window)를 만들었다. 고출력 광유전학 자극 레이저를 장착한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대뇌 피질 전반에 직접 빛을 쏴 효과적으로 광유전학 자극이 가능하도록 했다.

빔프로젝터를 통한 광 자극은 기존의 단순한 점의 형태가 아니라, 뇌 표면에 영화를 상영하듯 빛을 쏘는 방식이다. 즉, 뇌의 원하는 영역에 원하는 패턴을 자유자재로 생성할 수 있다. 한 번의 실험으로 하나의 고정된 영역이 아닌 여러 영역에 자유롭게 광 자극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이용해 하나의 마우스 실험 개체에서 대뇌 피질 전반에 다양한 뇌 영역들을 순차적으로 자극했다. 그리고 fMRI로 전체 뇌를 스캔하여 얻은 뇌 활성 반응에 대한 대량의 데이터를 통해 뇌 영역 간 상호작용의 인과적 관계를 나타내는 유효 연결성(Effective connectivity) 지도를 완성할 수 있었다.

동물 연구에 널리 쓰이는 두 종의 마취제인 이소플루레인(Isoflurane)과 케타민-자일라진(Ketamine-Xylazine)으로 마우스를 각각 마취시킨 뒤, 서로 다른 마취 조건 하에서 마우스 뇌의 유효 연결성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이소플루레인이 특정 대뇌 피질의 영역과 중뇌 영역 간의 연결성을 선택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패턴화된 광유전학 자극을 사용한 fMRI가 특정 뇌 상태에 의해 유도된 유효 연결성 변화를 효과적으로 측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특정 뇌 상태와 연관된 뇌 회로를 추출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으며, 이는 뇌 질환 및 약물 등으로 인한 뇌 기능 저하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단장은 “이 기술은 살아있는 동물에서, 다양한 대뇌 피질 영역에서 전체 뇌로의 기능적 회로를 매핑하고, 뇌의 상태에 따른 변화를 측정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라며, “뇌 전체의 유효 연결성과 구조적 연결성을 직접 비교해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향후 약물이나 질병, 혹은 생리학적 원인으로 변화된 뇌 기능과 특정 뇌 회로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며 “뇌 질환 및 약물 중독의 신경생리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뉴런(Neuron)'에 이날 온라인 게재됐다.

산업IT부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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