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의금상경(衣錦尙絅)’의 미의식

학고재 작가 15명 단체전 '의금상경'展
최명영·장승택 중국화가 왕쉬예까지 망라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군자의 도는 담백하지만 물리지 않고 간소하지만, 무늬가 있으며 온화하면서 조리가 있다. 하여 먼 것도 가까운 것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고,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며 은미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치를 안다면 가히 더불어 덕에 들어감이라.

중용 33장에는 시경의 ‘의금상경(衣錦?絅)’구절을 인용해 군자의 도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비단옷을 입고 더하여 겉옷을 입었다는 구절은 비단의 무늬가 드러남을 꺼려 홑옷을 위에 껴입은 것을 뜻한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임금에게 시집가는 제(齊)나라 귀족 여성 장강(莊姜)의 복식을 두고 위나라 백성들이 지은 말로, 당대에는 그 덕성을 칭송하는 노래로도 불렸다고 전해진다. 밖으로 드러난 것은 안이 근본이라는 메시지는 훗날 노자의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지 않아야 진정 위대한 성공을 이룰 수 있다(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는 말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 겸손의 철학이 열다섯 명 화사의 손끝을 통해 캔버스 위를 수놓는다.

장승택 '겹회화 150-23' [사진제공 = 학고재]

학고재는 오는 2월25일까지 ‘의금상경’을 주제로 작가 15명의 작품 55점을 전시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진명 미술평론가는 “화려한 형식을 감추고 내면의 빛을 드러내는 의금상경의 사상은 동아시아의 전통적 미의식에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며 “서구의 미니멀리즘이 태도였고 일본의 모노하(物派)가 세계와 사물의 관계를 말한다면, 우리 단색화는 한국의 고유한 정신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단색화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1941년생 최명영부터 백색 회화의 거장이자 여백의 작가로 알려진 1946년생 이동엽, 부친인 시인 박두진이 던진 ‘내일의 너’라는 화두를 명제로 작업을 이어온 박영하(1954~)와 캔버스 정면은 물론 측면을 강조하면서 붓을 대지 않고 푸른 빛이 배어 나오는 기법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인현(1958~) 등이 참여했다.

이인현 '회화의 지층' [사진제공 = 학고재]

빛의 작가로 ‘옴니’(Omni) 연작을 선보인 천광엽(1958~)과 겹회화(layerd painting)로 후기 단색화를 대표하는 장승택(1959~)에 이어 오직 세계를 감싸고 사물을 관통하는 마음 자체를 나타내려 한 김길후(1961~), 유일한 중국 작가이자 자연에 대한 무차별적 바라보기(无差??看)를 실천하는 왕쉬예(1963~)의 작품 또한 관객을 맞는다.

주목받는 설치미술가로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박기원(1964~)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에폭시를 칼로 그어 물감을 바르고 다시 에폭시를 부어 굳혀 칼로 긋고 물감을 바르는 지난한 과정의 후기 단색화 대표 작가 김현식(1965~)과 컴퓨터 노이즈를 확대해 회화에 재현하는 박종규(1966), 가장 전통적이고 민초적인 혁필화(Rainbow Painting) 기법으로 혁신적이고 엘리트적인 전자 자기장의 세계를 그리는 김영헌(1964~) 등도 동참했다.

최명영 '평면조건 22-710', 2022 [사진제공 = 학고재]

그림을 대지로 삼아 캔버스에 숲을 가꾸는 박현주(1968~) 작가와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침묵'(Silence) 연작으로 깊이가 도드라지는 선형 회화를 선보이는 윤상렬(1970~), 몸으로부터 원천적인 욕망을 화면에 나타내는 박인혁(1977~)의 작품들까지 이번 전시는 동시대 한국 단색화의 다층적 표면을 두루 살필 기회를 제공한다.

우정우 학고재 실장은 “본관부터 신관 지하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작업은 무채색에서 화려한 색채의 작품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새로운 재료를 통해 지평을 넓힌 단색화에 깃든 우리의 정신을 구현한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에서 진행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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