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가 온다]'한-사우디 공동펀드 논의'…한국벤처투자 만난 SVC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 나빌 코샥 SVC 대표와 만나
양국 공동 벤처펀드 조성 논의…사우디, MOU 연장 제안
해외 진출 기회 확대, 오일머니 투자 유치 등 기회 늘듯

지난주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태펀드 운용 기관이 만나 두 나라의 공동 벤처펀드 조성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인 한국벤처투자와 사우디의 사우디벤처캐피탈(SVC)이 그 주인공이다. 두 나라 벤처투자 기관 간의 소통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건 ‘오일머니’가 주목하는 우리 스타트업에 관심이 집중된다는 얘기다.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나빌 코샥 SVC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건 지난 10일 오전이다. 코샥 CEO는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투자부 장관과 함께 이날 오후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면담하기 전 한국벤처투자를 들른 것이다. 이들은 40여분간 양국의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지난해 두 기관이 맺은 양해각서(MOU) 기간을 연장하는 건에 관해 논의했다. 특히 한국과 사우디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양국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펀드를 만드는 방안도 제기됐다.

◆오일머니, 韓과 공동펀드 조성 추진 = 2018년 만들어진 SVC는 한국벤처투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정부 기관이다. 사우디 중소기업청의 직속 기구이자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모태펀드 운용기관이다. 총 15억 달러(한화로 약 2조원) 규모로 현재 34개 펀드에 출자한 상태다. 2005년부터 모태펀드를 운용해 누적 재원이 8조원에 달하고 1000개가 넘는 출자펀드를 결성한 한국벤처투자에 비하면 아직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사우디는 지난해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 정책과 노하우를 배우고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MOU 체결을 요청했는데, 이번에는 MOU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SVC 측이 지난해 맺은 MOU 기간을 연장하길 원한다는 제안을 해왔다"며 "그와 동시에 한국과 사우디 간 공동펀드를 조성하자는 이야기도 오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펀드 조성 규모와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사우디 측은 한국의 게임 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두 나라가 공동으로 출자해 펀드를 만들면, 이를 통해 벤처캐피탈(VC)의 직접적 투자를 받은 한국과 사우디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이 수월해지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벤처투자 초기 시장인 중동 지역 내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중동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오일머니’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ICT 기술력으로 중동 바꿀 스타트업 관심 =‘오일머니’가 관심을 갖는 우리 스타트업은 ICT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지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업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게임 등 콘텐츠 산업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동 시장 규모는 54억 달러 수준이며 특히 모바일 게임 산업은 2016년부터 5년 간 약 3배 성장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사우디의 국부펀드 PIF가 국내 게임사인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매입하면서 2대 주주가 된 배경이 됐다.

게임뿐만 아니라 K-콘텐츠도 현지 시장을 흔들고 있다. ‘아기상어’로 유명한 더핑크퐁컴퍼니의 활약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핑크퐁’ 유튜브 최근 5년 연평균 누적 조회수는 111%, 누적 시청시간은 97% 증가했다. 그 중 사우디가 누적 조회수 12억 뷰, 누적 시청시간 4000만 시간을 기록했다. 더핑크퐁컴퍼니는 중동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샤히드(Shahid)’에 콘텐츠 500편 이상을 배급하면서 100% 아랍어 더빙으로 현지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디지털 정부 시스템 구축과 관련 IT 인프라 개발을 위해 국가 차원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오고 있다는 점도 우리 스타트업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중동 국가의 IT 관련 예산은 총 133억 달러 규모로 특히 IT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부문 지출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클라우드 플랫폼 기업 베스핀글로벌이 올해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 중동·아프리카 법인을 확장 이전하고 클라우드 운영센터와 교육 아카데미를 설립한 것도 이 같은 정책 방향과 관련이 있다.

팜테크 스타트업 엔씽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에 250만 달러 규모의 스마트팜 '큐브'를 수출했다.

베스핀글로벌은 2019년 중동 시장에 처음 진출한 후 지난해 아부다비투자진흥청(ADIO)과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목표로 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올해 설립한 베스핀글로벌의 클라우드 운영센터에는 보안 운영센터와 함께 서버·애플리케이션(앱)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네트워크 운영센터가 포함돼 있다. 교육 아카데미는 파트너와 교육 기관, 학생들의 클라우드 기술 학습을 지원한다.

중동에서 외부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시사철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는 IT 기반 기술력으로 현지에 진출한 스타트업도 있다. 지난해 5월 팜테크 스타트업 엔씽은 아랍에미리트 사리야(Sarya) 그룹에 250만 달러(약 35억원) 규모의 스마트팜 ‘큐브(CUBE)’ 수출을 성사시켰다. 큐브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컨테이너 안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스마트팜이다. 엔씽은 최근 국토교통부가 사우디 수주 지원 활동으로 추진한 ‘한-사우디 로드쇼’에 참여해 자사의 기술을 사우디 시장에 알리기도 했다.

중동에 진출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중동은 사우디의 경우 30세 이하 청년 인구가 전체의 약 70%를 차지할 만큼 평균 연령이 젊고 인터넷 사용률은 높다"며 "중동 전역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데 우리나라의 테크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은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김철현 기자 kc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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