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미기자
[아시아경제 황수미 기자] 최근 금융계 유명 인사들을 둘러싼 차명 투자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동학개미 운동을 이끌었던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에 이어 국내 1세대 펀드매니저로 알려진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까지 차명 투자 등의 혐의로 금융당국의 제재 절차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강 회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차명 투자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가치 투자 대가인 존 리 전 대표가 같은 의혹으로 대표직에서 사임한 지 한 달 만이다.
강 회장은 지난 2008년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을 출범시킨 뒤 업계 최초로 펀드 직접 판매를 시작해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당시 가치 투자의 실천으로 1년 10개월 만에 1억원의 종잣돈으로 156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지난 2013년 스웨덴에서 출간된 '세계의 위대한 투자가 99인'이라는 책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워런 버핏, 피터 린치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강 회장은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펀드매니저 윤정학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강 회장은 차명 투자 의혹 등으로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진행한 에셋플러스자산운용에 대한 정기검사에서 강 회장의 자기매매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자기매매는 증권회사가 보유한 자금으로 유가증권을 사고팔아 수익을 내는 업무를 말한다. 이는 고객주문을 받아 매매를 대행하는 위탁매매와 구분된다. 거래원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위탁매매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위탁자로부터 매매거래의 위임을 받았을 때 거래원 자신이 직접적으로 이해관계를 갖는 매매거래를 먼저 처리해 수익을 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강 회장은 공유오피스 업체 원더플러스에 자신의 자금을 대여한 뒤 법인 명의로 주식을 수년간 매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원더플러스는 강 회장과 강 회장의 딸이 각각 대주주와 2대 주주로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를 차명 투자와 자기매매 행위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오피스업체에 자금을 대여해준 것만으로 자기매매라 판단한 것이 아니며, 단순 자금대여가 아니라는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강 회장에 대한 검사는 종료됐으며 제재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은 하반기 중 금융위원회에 제재안을 올릴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강 회장은 자금을 빌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자기매매로 볼 수도 없고 제재 대상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원더플러스에 연 4.6%의 이자를 받으며 자금을 빌려준 데다 이자 수익도 국세청에 모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손익이 개인이 아니라 법인에 귀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대주주란 이유로 합법적인 자금 대여를 자기매매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법인과 나는 차입자와 자금대여자의 관계일 뿐이며 100% 대주주라고 해도 그 회사의 자산을 모두 가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강 회장이 대주주인 만큼 손익이 강 회장에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해당 의혹이 금융투자업계에 미칠 파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존 리 전 대표 역시 금융당국으로부터 불법 투자 의혹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존 리 전 대표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세계 최초로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코리아펀드' 신화의 주역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특히 투자 철학을 가진 투자자로써 동학개미 운동을 이끌며 국내 자본시장 역사에 획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존 리 전 대표는 자신의 아내가 주주로 있는 회사에 메리츠운용이 펀드 자금을 투자했다는 제보에 따라 금감원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에 존 리 전 대표는 불법성이 없다며 반박했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지난달 28일 차명 투자 의혹을 받은 지 열흘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아울러 강 회장도 지난 29일 돌연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이날 에셋플러스자산운용에 따르면 강 회장은 오는 8월 열리는 임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등기이사와 회장직에서 사임한다. 1999년 에셋플러스운용의 전신인 에셋플러스투자자문을 창업한 지 23년 만이다.
황수미 기자 choko21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