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구미 3세 여아' 친모 징역 8년 선고 원심 파기환송… '추가 심리 필요해'(종합)

경북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의 친모 석모씨(49)씨가 지난해 8월 17일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뒤 대구지법 김천지원을 떠나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경북 구미시의 한 빌라에서 사망한 '3세 여아'의 친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16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미성년자약취 및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석모씨(49)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범행 전까지 이 사건 여아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피고인 외에 아무도 없었고, 범행 이후 피해자의 생존 여부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으며, 공소사실에 기재된 범행의 방법은 추측에 의한 것이고, 수긍할 만한 범행의 동기나 목적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건 여아가 피고인의 딸이라는 유전자 감정 결과가 있으나 그 증명력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이 사건 여아와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약취했다는 사실에까지 직접 미치는 것은 아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피해자를 이 사건 여아와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약취했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는 상태로서 그에 대해 추가적인 심리가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의 유죄판단을 수긍하기는 어렵다"며 "이와 달리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석씨는 사건 발생 당시까지 숨진 여아의 외할머니 행세를 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친모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석씨는 2018년 3월 31일 오후부터 다음날 아침 사이 구미의 한 산부인과의원에서 친딸인 김모씨(23·복역중)가 출산한 아이와 자신이 출산한 아이(숨진 3세 여아)를 바꿔치기해 딸의 아이를 어딘가로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또 석씨는 3세 여아가 숨진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2월 9일 딸이 살던 빌라에서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상자에 담아 옮기다가 그만둔 혐의도 받았다.

석씨는 수사 과정에서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신의 출산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딸 김씨가 구속된 후 지난해 2월 구미경찰서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타액을 이용한 유전자검사 방법에 의한 친생자 확인 감정 결과 '딸 김씨와 숨진 여아 사이의 친자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며 동일모계 관계로 확인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구미경찰서는 다시 국과수 부산과학수사연구소에 석씨의 타액을 포함해 감정을 의뢰했고 'STR 유전자형 분석' 결과 석씨와 숨진 여아 사이에 99.9999% 이상의 확률로 친자관계가 성립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감정 결과에도 석씨가 계속 출산 사실을 부인하자 경찰은 지난해 3월 석씨의 손톱과 모발, 구강상피세포를 이용해 다시 국과수 대구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고,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감정은 재판 과정에서도 한 차례 더 이뤄졌다. 1심 재판을 맡은 대구지법 김천지원의 의뢰로 대검찰청 DNA·화학분석과에서 실시한 감정 결과 석씨와 숨진 여아의 친모일 확률은 99.9999998%인 반면, 김씨와 여아 사이는 친자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4차례에 걸친 감정 결과를 토대로 석씨가 숨진 여아의 친모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 석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017년 7월 1일까지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생리대를 구입해온 석씨가 2018년 7월까지 생리대를 구입하지 않은 점 ▲2017년 7월 가슴축소브래지어나 보정속옷 등을 구매한 점 ▲종종 이용하던 대중목욕탕을 2017년 8월 6일 이후로는 이용하지 않은 점 등을 석씨가 2017년 7월부터 2018년 3월 사이 임신을 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사실들로 인정했다.

석씨 측은 재판에서 설사 석씨가 출산을 했다고 해도 어떤 동기와 방법으로 여아를 약취했는지에 대해 검사의 증명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 사건과 같이 피고인이 공소사실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고 사라진 피해자의 행방을 알 수 없으며 목격자의 진술이나 범행 장면이 찍힌 CCTV 등과 같은 객관적·직접적 증거가 전혀 없는 사건에서, 피고인만이 알고 있거나 피고인이 감추고 알려주지 않는 범행 전후의 연결고리까지 빠짐없이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통한 형벌권의 정당한 행사를 도외시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므로, 범행의 세부적 경위나 방법까지 전부 증명돼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여아 바꿔치기가 존재한다고 보는 이상 그것이 피고인에 의해 이뤄졌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범행동기와 관련해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이 부분 범행의 동기가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자신이 출산한 딸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었던 마음과 불륜사실을 남편에게 감추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딸이 출산한 아이보다 자신이 출산한 아이를 더 가까이에 두고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출산한 아이를 자신의 딸로 하여금 양육하게 하려고 바꿔치기 했다고 볼 수 있다"며 "실제로 딸 김씨는 퇴원 후 피고인의 제안으로 이 사건 여아와 함께 피고인의 집에서 함께 머물다가 피고인의 집 위층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은 2019년 1월 말경까지 남편과 10년 넘게 성관계를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남편에게 불륜사실이 드러날 것이 두렵고 출산을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양육할 수 없음을 염려해 딸로 하여금 자신이 출산한 여아를 양육하도록 하려고 위와 같은 바꿔치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같은 1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석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2심 재판부와 달리 수긍할 만한 범행의 동기나 목적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숨진 여아가 석씨의 딸이라는 감정 결과로부터 아이를 약취했다는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력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간접증거에 의해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을 인정할 때에는 증명이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하나하나의 간접사실 사이에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 간접사실이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러므로 유죄의 인정은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봐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며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것이 헌법상의 원칙이고, 그 추정의 번복은 직접증거가 존재할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범행에 관한 간접증거만이 존재하고 더구나 그 간접증거의 증명력에 한계가 있는 경우,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자에게 범행을 저지를 만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만연히 무엇인가 동기가 분명히 있는데도 이를 범인이 숨기고 있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간접증거의 증명력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것이 형사증거법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전자검사나 혈액형검사 등 과학적 증거방법은 전제로 하는 사실이 모두 진실임이 증명되고 추론의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해 오류의 가능성이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관이 사실인정을 할 때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가진다"면서도 "그러나 이 경우 법관은 과학적 증거방법이 증명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즉 증거방법과 쟁점이 어떠한 관련성을 갖는지를 면밀히 살펴 신중하게 사실인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외할머니이므로, 피고인이 쟁점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해자를 이 사건 여아와 바꿔치기한 후 데리고 간 사실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피해자의 친권자인 딸 김씨 부부의 의사에 반하지 않고 피해자의 자유와 안전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다면 이는 약취행위로 평가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가 약취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의 태양과 종류, 수단과 방법, 피해자의 상태 등에 관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범행 동기와 관련해서도 "피고인이 만일 외도를 해 임신을 하고 시기를 놓쳐 임신중절수술을 받지 못했다면, 가족들 몰래 출산을 할 동기가 될 수는 있으나,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더라도 딸 김씨가 낳은 자신의 손녀를 가족들 몰래 돌보거나 유기해야 하므로, 자신의 출산 사실을 감추려는 마음만으로는 이 사건 범행을 할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제1심은 피고인이 자신이 출산한 딸을 손녀보다 가까이에 두고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 사건 범행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설시했으나, 일반적으로 딸과 손녀가 가족들을 모두 속이고 바꿔치기 범행을 감행할 만큼 애정에 있어 차이가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런 동기에서 약취 범행까지 감행했다면, 김씨가 이 사건 여아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할 무렵 이 사건 여아를 상당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았던 피고인의 행동을 설명하기 곤란하고, 이 사건 여아의 사체를 발견한 후 경찰에 신고할 때까지의 피고인의 행동 역시 자연스럽게 설명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하급심이 인정한 사실관계 중 추가 심리가 필요해 보이는 점들을 일일이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산부인과에서 측정한 신생아 몸무게의 변화가 이례적인 것인지 여부와 신생아실에서 사라진 식별 띠의 분리가능성에 대해 보다 정확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이번 사건이 일어난 산부인과의원은 건물에 들어가서 신생아실 입구까지의 출입이 자유로웠을 뿐, 신생아를 데리고 가기 위해서는 산모가 직접 가거나 산모수첩을 가지고 가야 했고, 오전 9시 이전과 오후 8시 이후에는 일절 영아를 신생아실 외부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간호사의 진술에 관해서도 좀 더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재판부는 아이 바꿔치기가 이뤄진 전후 아기가 다른 사람인지 여부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므로 전문가에게 아기의 얼굴 사진 판독 등을 의뢰해 의견을 듣는 등의 방법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어 보이고, 석씨가 2018년 2월 26일 재입사 이후 연장근무 등 보통 하루 10시간씩 근무한 만큼 갓 태어난 신생아를 누가 어디에서 돌봤는지에 대해 좀 더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실제로는 동생이었던 아기를 자신이 낳은 딸로 알고 키우다 방치해 숨지게 한 석씨의 딸 김씨는 2심까지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뒤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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