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준호 '한때 흥행 좇았지만…아름답게 스며들 때'

영화 '어부바' 종범役
세월 가며 내려놓는 법 배워
29년차 배우의 고백
"개봉하면 아들과 먼저 볼래요"

정준호/사진=트리플픽쳐스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세상에는 1등과 2등이 정해져 있고, 누구는 메이저, 누군가는 마이너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세월이 지나가며 내려놓는 법도 알았죠. 나이가 들면서 배려심도 생기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편해졌어요. 올라오는 후배들을 보며 맡은 역할에 충실하며 아름답게 스며들어야겠다는 철학도 생겼습니다."

배우 정준호(52)는 평온했다. 차분한 얼굴로 세월의 무게가 흠씬 배어든 이야기를 꺼냈다. 6일 오전 영화 '어부바'(감독 최종학) 개봉을 앞두고 화상으로 만난 그는 "수십억, 수백억을 쏟아부은 메이저 영화를 찍어왔지만, 이번에 인센티브로 출연료를 받는 상부상조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1993년 MBC 24기 공채탤런트로 데뷔한 정준호는 드라마 '왕초'(1999)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로 떠올랐다. 그가 출연한 영화 '두사부일체'(2001)·가문의 영광'(2002)·'공공의 적2'(2005)·'투사부일체'(2006) 등이 인기를 얻으며 2000년초 영화계를 주름잡았다.

이후 2011년 MBC 전 아나운서 이하정과 결혼해 슬하에 아들 정시욱군과 딸 정유담양을 뒀다.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배역도 달라졌다. 드라마 '마마'(2014)를 비롯해 '옥중화'(2016), '스카이캐슬'(2018),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히트맨'(2020) 등 무게 있는 역할로 분했다.

정준호는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어부바'로 돌아온다. 그는 극 중 늦둥이 아들과 철없는 동생 그리고 자신의 분신 어부바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종범을 연기한다. 사뭇 달라진 행보. 담담한 얼굴로 그는 자신의 연기 철학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어부바' 시나리오를 받고 '이 영화다' 했다"며 "오래 배우 생활했지만, 아들과 뭉클하게 나눌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 끌렸다"고 출연 배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깊이 이해한 후 역할에 크게 공감했다"고 했다.

"아들이 9세인데 TV나 매체를 통해 제가 영화배우라는 걸 알게 되면서 '아빠는 무슨 영화 찍었어?'라고 묻더라고요.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여주며 말해줬지만, 같이 보자는 말이 나오는 영화는 많지 않더라고요. 자극적인 작품도 있고요. 그래서 '어부바'에 더 끌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개봉하면 아들 녀석을 데리고 제일 먼저 같이 볼 생각입니다."

지난 29년, 배우로 사는 동안 흥행을 좇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정준호는 "영화는 투자를 통해 만들어지다 보니 주연배우로서 투자자들이 손해 보지 않고 좋은 결과를 가져갈 수 있게 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우선적으로 흥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비슷한 장르, 캐릭터를 반복해서 연기하기도 했다. 내가 잘하는 분야, 더 자신 있는 쪽에 치우치지 않았나. 그래야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안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정준호가 나와서 영화가 잘 됐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솔직히 말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배우로서 가족의 소중함, 따뜻함을 전하는 영화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어부바'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가정을 지키는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때론 무릎을 꿇고 자존심도 버려가며 가족을 위하는 형이자 아버지의 모습에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들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어제 어린이날을 맞아 아들, 딸과 사무실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옥상에 도시 야경 그림을 크게 붙여놨는데 아들이 카메라를 들고, 그 그림을 마치 자유의 여신상을 밟는 듯한 앵글로 찍고 있더라. '카메라 연출에 재능이 있는 거 같다'고 말하니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며 웃었다.

작품을 향한 변함 없는 열정과 달라진 마음가짐도 드러냈다. 정준호는 "메이저, 마이너 가리지 않고 어떤 영화든 배역의 크기에 따라 출연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저희를 필요로 하는 현장이라면 역할에 적합한지 아닌지 판단해 임하는 게 진정한 영화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화에 파묻힌 순간이 행복하니까 앞으로도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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