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기자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중국 정부가 이달부터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한다고 합니다. 정식 발행 이전의 시범 발행 단계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지폐에 달라붙은 바이러스가 감염병을 옮길 수 있다는 이유로 비접촉 결제 수단이 각광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승부수를 던진 것입니다. 오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세계인들과 함께 쓰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디지털 위안화로 미국 달러가 가진 패권을 회수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됩니다.
현재 국제 무역 결제의 약 90%,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60%가 달러로 운용됩니다. 반면 중국 위안화의 비중은 2%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있는 한 미국 금융시스템을 통하지 않고는 무역 거래나 국제 투자가 불가능한 것이지요. 미국은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들은 자국 금융망에서 배제하거나 다른 국가와의 거래를 막는 제재를 통해 패권을 휘두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디지털 화폐가 확산되면, 중국과 거래하는 나라와 기업들은 미국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위안화로 무역 결제를 할 수 있게 되고 미국의 통제력은 약해지겠지요. 디지털 위안화가 미국의 금융 패권을 뒤흔들 수 있을까요?
중국중앙(CC)TV 등은 최근 인민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사업을 공식화하고, 선전(광둥성)과 쑤저우(장쑤성), 슝안신구(허베이성), 청두(쓰촨성), 동계올림픽 개최지(베이징 일대) 등의 일반 소매점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슝안신구 지부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등을 상대로 디지털 화폐 설명회를 가졌고, 쑤저우시는 공무원들에게 교통비 등을 디지털 위안화로 지급할 계획입니다. 또, 중국 4대 국유은행 중 하나인 농업은행은 디지털 화폐를 결제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발행하려는 디지털 위안화는 어떤 화폐일까요? 중국 정부가 발행하려는 디지털 위안화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입니다. 디지털화폐는 내장된 칩 속에 돈의 액수가 기록돼 물품을 구매할 때 상점의 단말기에서 사용액 만큼 차감하는 전자화폐입니다.
CBDC는 보통의 디지털화폐(암호화폐)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CBDC는 실물 명목화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블록체인이나 분산원장기술 등을 이용해 전자적 형태로 저장되는 화폐입니다. 발행 대상에 따라 일반적인 소액결제용과 금융기관간 거액결제용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자적 방식으로 구현됨에 따라 현금과 달리 익명성을 제한할 수 있고, 이자지급이 가능하며, 보유한도 설정, 이용시간 조절도 가능합니다. 디지털 기반이라는 점에서는 일반 암호화폐와 비슷하지만 CBDC는 중앙은행에서 직접 관리하지만, 암호화폐는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상에서 제3자의 개입 없이 거래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6년의 준비 끝에 내놓은 야심작입니다. 중국은 이미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위조 지폐 성행으로 상점에서는 현금보다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나 텅쉰의 '위챗페이'를 선호합니다. '거지도 QR코드로 구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바일페이 사용은 중국인들에게 일상입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가 굳이 CBDC를 추가로 보급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CBDC는 중앙은행의 화폐 기능과 결제 기능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훨씬 파급력이 큽니다.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안정된 화폐인데다 중앙은행이 모든 거래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어 자금세탁이나 도박·테러 자금을 차단하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국이 개개인의 모든 금융 활동을 속속들이 파악해 사생활을 완벽하게 감시하는 '빅브러더 사회'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알리페이나 위챗페의 폭발적 성장으로 기존 금융권은 '재주는 은행이 부리고 돈은 모바일페이 업체가 챙겨 가는' 상황에 대해 불만이 커지고 있고, 인민은행은 화폐 주권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CBDC 발행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비자가 알리페이로 계산하고 싶어도 위챗페이 결제만 되는 가게라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CBDC는 지폐와 똑같기 때문에 어떤 앱으로도 결제할 수 있고, 시중은행 앱으로도 지불됩니다. 두 모바일 업체가 장악한 결제 주도권을 기존 금융권이 어느 정도 되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현재 전 세계 수십 개 중앙은행이 CBDC 발행을 검토 중입니다. 중국보다 먼저 CBDC를 개발했던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2015년 디지털화폐DNB코인을 선보였는데, 실제 유통되지는 않지만 은행 내부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 스웨덴 링스방크는 국립 디지털화폐를 발행해 국가 결제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고, 스페인계 대형은행 BBVA, 산탄데르은행 등 글로벌 해외은행들도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프랑스 중앙은행도 유로존 국가로는 처음으로 디지털화폐 개발을 공식화했으며, '현금 사회'인 일본도 CBDC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라며 존재를 부정하던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CBDC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한국은행입니다. CBDC 발행의 필요성을 낮게 평가했던 한국은행도 최근에는 디지털 원화 발행을 서두르는 분위기입니다. 지난달 6일 한국은행은 내년에 CBDC 발행과 관련한 시범운영을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다만, 몇 가지 보완책이 필요해보입니다. 저소득층과 노령층의 불편함이 먼저 해결돼야 합니다. 은행 계좌가 없거나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지 않는 인구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도 해소돼야 합니다. 금융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생활을 어느 정도 선까지 보호해야 할지 등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합니다.
이런 단점들이 있지만, 화폐 제작 비용절감, 비리나 탈세 추적 가능 등 장점이 더 많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CBDC를 발행하려고하는 것이겠지요? 하루빨리 디지털 원화를 사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