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욱기자
김효진기자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김효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가 5차에 이르는 대책 발표를 통해 수백 조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기업들이 돈가뭄에 시달리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신용등급이 우량한 기업들에게만 은행 지원이 쏠리면서 정작 한계상황에 내몰린 중저신용등급의 기업들에게는 돈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 회사채 발행 규모가 작년 대비 반토막 수준에 그칠 정도로 자금 조달은 악화된 상황이다. 산업계에서는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들은 한계기업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심지어 예상을 웃돈 실물경제 충격으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잠재적 부실대상 기업의 급증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간 악순환적 연계로 작용해 자칫 금융위기로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자금시장 경색 금융위기 이후 최악 =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한 달 전보다 11포인트 내린 54였다. 낙폭은 역대 가장 컸으며 지수는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2월(52)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기준치인 100보다 낮을수록 이를 비관적으로 여기고 있는 기업이 낙관하는 곳보다 많아졌다는 뜻이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1월 이후 11포인트가 하락한 것은 처음이다.
심지어 오는 4~12월중 만기가 도래하는 일반기업 발행 회사채 규모는 20조6000억원, 기업어음(CP) 규모는 15조4000억원 등으로 모두 36조원이다. 이중 2분기에 회사채 8조9000억원, CP 11조4000억원 등 20조30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한다. 당장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를 갚으려면 기업들은 새 회사채를 발행해야 한다. 하지만 4월 회사채 발행 규모 2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자금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 됐다.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자 대기업마저 이른바 마이너스 통장으로 불리는 한도성 대출을 최대한 늘리면서 현금 확보에 나섰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비우량기업일수록 한계상황으로 내몰리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량한 기업은 회사채 시장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할 여유를 가지고 있으나 문제는 신용등급 BBB 이하 비우량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에 대한 신속한 자금지원이 필요한데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지 따져보는 것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금조달이 더뎌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돈 풀라는데…은행은 "부실 우려"= 정부는 각종 건전성 관련 규제 완화 및 부실에 대한 면책 카드를 꺼내들며 기업들에 대한 은행의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이다. 우선 금융회사의 해외차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이달부터 3개월간 외화건전성 부담금 부과를 면제했다. 면책 제도도 시행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코로나19 관련 피해를 입은 기업 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유도할 목적으로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없는 한 대출 및 이에 따른 부실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
하지만 은행권은 코로나19 사태가 대내외적으로 장기화ㆍ고착화하는 가운데 가능한 한 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부실에 대한 책임은 결국 다른 누구와 나눠질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눈치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업무 관계자는 "과연 어느 은행 담당자가 나중에 부실이 생겼을 때 정부의 면책 방안을 들이밀면서 '책임 묻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다른 시중은행의 고위 임원은 "평시에는 금리가 높다고 은행을 외면하던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 사정이 나빠지니 갑자기 은행에 의지하려는 분위기가 짙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로 급격히 부실에 빠진 기업들의 경우 자구안을 마련하고 추가대출 등 도움을 청하는데, 그동안 부실 기업이 마련한 자구안이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얼마나 많았느냐"고 했다.
은행들은 당장 2분기부터 닥쳐올 것으로 보이는 '코로나 쇼크'를 최소화하는 것도 버겁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빅컷(큰 폭의 금리 인하)'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면서 순이자마진(NIM)의 하방 압력이 커지고 국내 경기의 역성장이 직격타를 날릴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양두용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정부, 국회 등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한은이 회사채 직접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결국 모럴 해저드냐, 아니면 적시에 자금 공급해 기업 도산 위기 막느냐 선택의 문제로 미국은 대담하고 적극적인 정책 펴는데 우리보다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