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반복적으로 일 떠넘기고 무시'…도 넘은 '직장갑질'

2018년 직장갑질 지수 100점 만점에 35점 '열악'
'괴롭힘 방지법' 국회 계류…관련 처벌 가이드라인 마련돼야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황효원 기자] #20대 직장인 A씨는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을 견디다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8시30분 출근, 오후 5시30분 퇴근을 기반으로 한 근로계약서에 서로 합의를 하고 입사했지만 그는 초과근무에 시달려야 했다. A씨는 초과근무수당, 주말근무수당도 모두 받지 못했다. 사측은 포괄임금제라는 명분하에 야근수당, 초과근무 수당이 모두 포함된 것이라 주장했고 결국 A씨는 사직서를 제출했다.#올해 7월 한 디자인 에이전시(대행사)에 입사한 김모씨는 포괄임금제에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주로부터 부당하게 임금을 떼였다. 김씨가 근무한 5개월 간 전체 22주 중 한 주만 빼고 주간에 40시간을 초과, 연장근로를 했다. 이렇게 5개월 간 김씨가 한 연장근로는 총 261시간49분으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했을때 떼인 임금이 313만 원에 달한다. 사장이 매달 60만 원씩을 떼먹은 셈이다. 이후 김씨는 노동정에 진정을 제기, 체불된 금액을 모두 돌려받았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회장.사진=연합뉴스

▲마음에 멍드는 직장인들 늘어…부당한 업무 갑질 ↑대부분의 2·30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최근 직원 폭행 동영상이 공개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회장 사건을 비롯해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공회항 사건’등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폭로돼 사회적 공분을 낳았다.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조직 내에 숨어있던 ‘갑(甲)질' 문화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직장인들은 ‘갑질’문화에 말 못하는 속앓이를 하고 있는데 특히 대표, 부장 등 중간관리자 보다 함께 일하는 선후배들 사이의 갈등을 겪는 이들도 대폭 늘어났다. 이들이 겪는 고통은 인신공격에 가까운 질책이나 따돌림, 휴가조차 쓸 수 없게 만드는 압박감 등이 그 예인데 이들은 기업 문화의 후진성을 지적하고 나섰다.시민답체 ‘직장갑질 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직장 내 갑질 지수는 100점 만점에 35점이었다. 100점에 근접할수록 갑질이 심각하다는 뜻으로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답한 직장인도 임금 수준·기업 규모를 떠나 무려 43.6점을 기록했다.김씨가 직장갑질119에 신고한 위의 제보 내용처럼 대부분의 직장인은 포괄임금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김씨가 작성한 계약서는 전형적인 포괄임금제 근로계약서로,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에 존재하지 않는 임금산정방식이다. 임금은 기본임금에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외수당을 합산해 지급하는게 원칙이지만, 포괄임금제는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근로계약 시 사용자와 노동자가 정한 일정액의 시간외수당을 매월 지급한다.문제는 근로계약시 정한 시간외수당이 노동자가 실제 일한 노동시간보다 적어 피해를 볼 경우,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부분 직장인들은 연장,연차수당을 미리 정해놓은 것은 문제가 없다는 회사의 말을 그대로 믿기가 일쑤, 사측으로부터 돌아온 "계약서에 서명한 것은 본인"라는 말에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여기서 더 나아가 직장갑질 119는 탄력근로제 확대 시도를 더 심각한 문제로 판단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이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될 경우 6개월 동안 주당 64시간 일을 시키더라도 나머지 6개월은 주당 40시간만 시키면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권호현 직장갑질119변호사는 "정부와 여당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정책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장시간 노동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라며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이 정책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직장인이 10명 중 7명에 달한다. 사진=연합뉴스

▲'직장 내 괴롭힘' 10명 중 7명 겪어…'일은 내가 혼자 다 하나'20대 직장인 이모씨는 정당한 채용과정을 거쳐 업무를 배정받았지만 그의 상사는 항상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업무를 과중 부여했다. 상사는 이씨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이씨가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준비하는 행사에도 이씨에게 편중되게 업무를 부여, 업무적인 면에서 서로 갈등이 있다보니 회사에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이씨가 겪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직장 내 괴롭힘도 만연해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8~9월 진행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20~64세 남녀 1500여명 중 73.7%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경험한 것이다.'직장갑질 119'가 총 10개 영역 68개 지표로 나눠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대한민국 기업 100곳 중 35곳에서 직장갑질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68개 지표는 Δ근로기준법 Δ남녀고용평등법 Δ산업안전보건법 Δ노동조합법 등 현행법이나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Δ'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근거로 만들었다. 정상적인 직장이라면 갑질 지수가 '0점'이어야 하지만 지표별 점수를 보면 한 자리 점수가 나온 지표는 하나도 없었다.지표별로는 Δ승진·해고 등 인사 문제 38.2점 Δ채용과정 및 노동조건 37.1점 Δ출산·육아 36.9점 Δ차별 및 괴롭힘 35.8점 Δ건강 및 안전 35.8점 Δ조직문화 35.6점 Δ작업 및 노동시간 35.3점 Δ폭언·폭행 및 성희롱 30.6점 Δ노동 권리 33.5점 Δ퇴직·해고 30.4점 순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직장갑질’ 10명 중 7명이 겪지만, 관련 ‘가이드라인’ 미비문제는 이런 ‘직장갑질’을 마땅히 해결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직장 내 갑질’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현행법으로도 규율하기가 모호하다는 이유다. 지난 9월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정서적 고통을 줘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하고, 조치 사항까지 담았지만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해 사업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2015년부터 발의된 7건 관련 법안이 모두 계류 중이다.우리와 달리 해외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명확하게 규율을 정해 가이드라인을 마련, 처벌을 내리고 있다.스웨덴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을 규율하기 위해 기존 법률과 ‘직장 내 괴롭힘 조례’라는 새로운 규정을 마련해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일본의 경우 직장 내 우위성에 따라 발생하는 권력형 괴롭힘(파워하라) 이외에도 성적괴롭힘(세쿠하라), 모성 괴롭힘(마타하라), 인종 괴롭힘(레이하라) 등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 문제게 직면해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2년 ‘직장 내 따돌림, 괴롭힘 문제’에 관한 워킹그룹을 설립,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과 판단기준 등을 제시하고 이 기준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또 산업재해보상 및 관련 소송에 이를 활용하는 등 체계적으로 입법안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황효원 기자 woniii@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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