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넙치/김경후

어둑한 보도블록, 울툭불툭, 넙치 하나, 누워 있다, 그것은 진흙색 바닥보다 넓적하게, 깊게, 바닥의 바닥이 되고 있는 중, 가끔, 이게 아냐, 울컥, 술 냄새 게운다, 뒤척인다, 하지만 다시, 눌어붙어, 바닥이 된다, 게슴츠레, 왼쪽 눈, 위로, 울컥, 흙탕빛 노을 지나가고, 비닐봉지들, 키득대는 웃음, 지나가고, 슬리퍼 끄는 소리, 지날 때마다, 울컥, 그래, 나, 바닥이라고, 소리친다, 그것은 더욱 격정적으로 바닥이 되기로 맹세한다, 끌로도 끝으로도 떼어 낼 수 없는 바닥, 더 바닥, 더, 더 바닥이 되기로, 울컥,지금 넙치가 나올 철인가, 뭐, 그렇지, 이 바닥이나, 저 바닥이나, 다 그렇지, 사내 둘, 바닥 끝 지나 골목 끝, 횟집 문을 연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 마지막 바닥인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닥 아래엔 또 다른 바닥이 있었다. 어느 바닥도 언제나 마지막 바닥은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언젠가부터 내 소원은 차라리 바닥을 치는 것이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바닥을 치고 솟구치고 싶었다. 그러나 바닥을 칠 때마다 바닥은 더욱 깊어졌고 한층 넓어졌다. 도무지 바닥에 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내 마지막 바닥은 어디란 말인가. 아아, 그리운 바닥, 몸서리쳐지도록 가닿고 싶은 바닥. 그런데 내가 바닥을 그리워하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내 위에 서럽게 드러누워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위에 다른 누군가가 드러누워 울고 있었다. 아, 그랬구나. 실은 내가 바닥이었구나. 처음부터 그랬듯 내가 맨 밑바닥이었구나.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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