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늦가을/반칠환

서리 맞은 박꽃이 하루를 더 피어 있다날개가 해진 잠자리가 하루를 더 날고 있다알을 슬고 자궁이 텅 빈 사마귀가한나절을 더 풀잎에 머물고 있다구십 년 늙은 노인이 하루를 더 늙고 있다■어느 날 낙화가 그러하듯 이별은 느닷없이 닥쳐오고 부고는 문득 전해진다. 단 하루 무심했을 뿐인데 꽃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런 하루들이 더해져 연인들은 헤어지고, 정든 사람은 다시 부를 수 없는 곳으로 갑자기 사라진다. 그러니 하루란 얼마나 소중한가. 아니 절대적인가. 오늘 하루를 함께하는 것은 어쩌면 남은 평생을 같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루를 다해 지고 있는 꽃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곁의 사람을 돌아보자. 그곳에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일생 전체가 있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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