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첫/이현호

   어느새 창밖으로 눈은 눈을 덮고 있었다  첫눈이 온다고 하자 우린 첫눈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 본 눈이 기억나니? 기억나지 않는 처음들을 세어 보는데  우린 누구의 전생을 살고 있는 걸까 공손을 배워야겠다  첫눈은 첫눈이라고 그는 다시 말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얘기 처음이 아닌 거 같아 우리가 언제 만났더라?  창밖으로 방금 지나쳐 간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무섭게 사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개나리가 핀 걸 처음 본 날, 아니 아니 개나리가 정말 노랗네, 그럼 병아리는 어디 있지, 그러면서 동무들과 담장 아래를 한참 맴돌던 날, 그 도란도란했던 봄날. 그 봄날은 전생만 같아 전생처럼 기억이 나질 않고. 낙숫물이 참 맑다고 생각했던 건 언제였더라. 그건 모르겠고, 정녕 모르겠는데, 낙숫물을 받아 울던 얼굴을 훔치던 스물두 살의 어느 여름 저녁은 생생하고. 그날 내 어깨를 두드려 주던 형의 뭉툭한 사투리 하나하나도 끝내 생생하고.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그래 꼭 만나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해 놓곤 첫눈처럼 잊어버린 사람, 그 사람. 그 사람은 다시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었을까, 내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첫'은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얼룩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어 두 손을 가만히 맞잡아 보는 저녁이다. 채상우 시인[아시아경제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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