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아진 지갑 우울한 연말]치솟는 장바구니 물가…'파티는 커녕 식탁도 썰렁'

계란, 라면, 맥주 가격 등 줄줄이 인상AI 사태로 닭고기 값도 오를 조짐한우 대신 사먹는 미국산 소고기도 38% 치솟아레스토랑·호텔은 연말 특수에 가격 50% 이상 올려"평소 먹던 메뉴는 없고 고가 코스만 판매"

서울 시내의 한 마트. 계란 판매를 제한하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오주연 기자] 병신년(丙申年) 끝자락, 연말 소비 특수가 실종됐다. 정치적 혼란으로 소비 심리가 고꾸라진 데 이어 각종 식재료ㆍ가공식품값까지 줄줄이 오르면서 소비시장은 최악의 분위기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푸짐한 식탁은커녕, 장바구니에 계란 한 판을 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가족들과 케이크를 자르고, 꽃 한 송이를 나누며 새해를 기다리는 일은 보기 드문 풍경이다. 얇아진 지갑과 인색해진 소비로 관련 자영업자들 역시 우울한 연말을 맞게 됐다. 직장인 김모씨는 연말 가족들과 특별한 저녁 식사를 즐기려다가 오히려 기분이 우울해지고 말았다. 인터넷으로 불고기 거리와 곁들일 채소, 간식 몇 가지를 고르고 나니 20만원이 훌쩍 넘어간 것이다. 외식으로 해결하는 게 낫겠다 싶어 자주 가던 레스토랑을 예약하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평소의 메뉴 대신 가격을 50% 이상 올린 '연말 전용 코스'만 판매한다는데, 그마저도 원하는 시간대 예약은 이미 마감된 후였다. 고병원성 조류독감(AI) 사태와 각종 식재료ㆍ가공식품값 인상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다. 여기에 재료비 부담 상승과 연말 수요 쏠림의 영향으로 외식, 숙박업소들까지 잇달아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서민들은 지갑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말 식탁을 덮친 인상 행렬= 연말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은 AI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여기에 라면, 맥주 등 서민들이 즐겨 찾는 식품 가격마저 인상돼 체감 물가는 가파르게 치솟는 추세다. 23일 한국계란유통협회에 따르면 전날 계란 산지에서 고시가격은 종전 144원에서 52원이 오른 192원으로 거래되고 있다. 계란 가격이 한꺼번에 44%나 인상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계란 가격 인상은 최근 AI 사태로 공급량이 줄어든 데다가 일부 중간 상인과 대기업의 사재기 영향이 가장 크다. 안정적인 수급과 유통마진 보전을 위한 이들의 대규모 사재기ㆍ잠축(潛蓄)으로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계란을 주요 원료로 하는 빵, 과자 가격도 꿈틀거리고 있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파리바게뜨는 앞선 4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6.6% 올렸는데 최근의 '계란 대란' 사태로 추가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AI에 따른 방역 조치 여파로 육계(식용계)를 사육하는 농가 절반이 사육할 병아리를 새로 들여오지 못해 닭고기 가격 급등도 예상된다. 한우 가격 급등으로 인기가 높아지던 미국산 소고기 가격도 치솟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일 기준 미국산 불고기(냉장 100g) 가격은 2980원으로 한 달 전보다 38.4% 뛰었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면, 맥주 가격 역시 인상 행렬이다. 하이트 진로는 오는 27일부터 하이트, 맥스 등 관련 제품을 평균 6.33% 인상키로 했다. 앞서 오비맥주는 지난달부터 카스, 프리미어OB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 올렸다. 농심도 지난주 판매ㆍ물류ㆍ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등 대표적인 라면 제품을 평균 5.5% 올렸다.

롯데호텔월드_라세느

◆외식ㆍ숙박은 연말 특수로 가격 인상= 특별한 연말을 보낼 수 있는 고급 외식시설과 숙박 업체들은 대목을 맞아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른바 '빅3 호텔'로 꼽히는 신라, 조선, 롯데호텔의 경우 평소보다 최대 50%가량 가격을 올렸다. 롯데호텔서울의 뷔페업장 라세느에서는 24일과 25일 양일간 식사 가격을 평소 대비 높게 책정했다. 저녁 시간대 뷔페 이용 가격이 10만5000원이었지만 12월에는 연말 가격인 12만9000원으로 올렸으며 특히 크리스마스이브(24일)와 당일(25일)에는 저녁의 경우 15만9000원으로 평소 대비 51%나 높게 받는다. 신라호텔서울의 뷔페업장 더파크뷰도 12월에는 가격을 일부 조정했다. 평소에는 저녁 시간대 가격이 10만5000원이지만 12월9일부터 15일까지 13만5000원, 16일부터 31일까지는 15만9000원이다. 웨스틴조선호텔의 뷔페업장 아리아도 기존 주말, 저녁 10만2000원이었던 식사 가격을 12월 한 달간 12만5000원으로 인상했다. 호텔 업계 관계자는 "평소보다 뷔페 메뉴가 추가로 구성되고 와인 등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등 서비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일반 모텔 등 숙박시설이 평소 대비 2~3배 높인 가격을 받거나 시내 유명 식당ㆍ주점은 제한된 고가의 메뉴만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부진한 매출을 연말 몰린 수요에서 보전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편 정부는 최근 유가 상승과 AI 확산 등으로 오름세를 보이는 일부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공공요금 등을 중심으로 민생물가를 철저히 관리하기로 했다. 이날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민생물가 안정방안을 논의했다. 기재부 차관보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을 공동 팀장으로 하는 관계기관 합동 TF를 구성해 계란 수급대책 수립뿐만 아니라 민생물가 안정, 피해 업체 지원 등을 맡기기로 했다. 설 명절에 대비해 성수품 수급안정방안을 포함한 설 민생대책을 다음 달 중순까지 마련할 예정이다.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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