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2016년 수능…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출제, 올핸 고생한 수험생들 또다른 시험에 들지말게 하기를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던 1960년대 부모에게 자녀의 중학진학은 오늘의 대학진학만큼이나 아이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중요한 선택이었다. 중학교 입학고사에 쏠린 열기는 오늘날 수능 못지 않았고, 한 문제 차이로 당락이 좌우될만큼 치열한 학생들의 경쟁은 1964년 이른바 '무즙파동'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출제오류만큼이나 과열된 부모들의 교육열이 빚은 촌극은 결국 명문 중학의 폐교와 교명변경으로 이어졌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솥단지를 이고 지고 일군의 아주머니 행렬이 바른 걸음으로 시청사로 향한다. 보무도 당당한 ‘아줌마 부대’는 보안요원의 제지를 뚫고 시청 복도 끝 교육위원회 앞에 도착한 뒤 솥단지 안 엿을 들이밀며 “무즙으로 만든 엿 한 번 드셔보시라!” 고래고래 외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엿 먹어라’ 소리 앞에 꼼짝 못 하게 된 교육위 공무원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무즙 파동과 치맛바람수능을 하루 앞둔 오늘, 고3 수험생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부담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버겁기만 하고, 그간 차분히 쌓아온 공부에 대한 만 가지 생각은 수험생을 휘감아 돌지만, 이 고통을 중학교 문턱에서 감당해야했던 반세기 전 ‘꼬마 선배’들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솥단지 엿 사건은 1964년 12월에 치러진 65학년도 서울특별시 전기 중학 필답고사에 출제된 자연 과목의 한 문제 때문에 벌어진 일.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닌데다 비평준화 상태였기 때문에 명문 중학교 입시를 위해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은 치열한 시험준비에 내몰렸고, 논란이 된 문제는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묻는 문항으로, 정답은 1번 디아스타아제였다. 그러나 2번 보기로 출제된 무즙 또한 디아스타아제가 들어있어 엿을 만들 수 있었고, 무즙을 정답으로 써낸 학생의 학부모들은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한다며 출제진에 거세게 항의하고 나섰다. 무즙을 넣고 만든 엿까지 들고 찾아온 열혈 학부형의 노력은 결국 이듬해인 1965년 2월 서울고등법원 특별부의 판결로 당초 자녀가 합격취소 됐던 중학교에 특별 전학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중학교 입시 존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었고, 결국 1971년 경기중학교를 비롯한 전국 33개 명문 중학교는 폐교되거나 교명을 변경해야만 했다.
북미 자유무역협정권(NAFTA)과 유럽연합(EU)의 총생산에 대한 문제에서 현실의 가변성으로 인해 복수정답을 인정해야했던 평가원은 출제오류보다 이후 사태 수습에 안일한 태도로 대응해 오늘까지 피해학생들의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NAFTA와 EU 논쟁2014학년도 수능엔 사회탐구 세계지리 문제에서 복수정답이 나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사건이 일어났다. 북미 자유무역협정권(NAFTA)과 유럽연합(EU)의 총생산에 대한 보기를 고르는 문제에서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과 달리 실제 총생산이 2010년부터 북미가 유럽연합을 추월하며 중복정답이 발생한 것. 논란 직후 평가원은 해당 문제에 대해 신속한 오류인정과 성적 재산출 조치를 취해야했으나, 평가원의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 우선’ 주장으로 인해 소송으로 이어졌고, 2014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의 오류인정 판결로 해당 문제로 지원 대학에 불합격된 학생들에게 추가 합격 확인 기회가 주어졌으나, 이미 1년의 시간을 허비한 학생들은 피해 학생 모임을 구성하고 평가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출제오류부터 안일한 사후대처가 불러온 참사였으나, 사태를 책임져야 할 평가원장은 이미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뒤였고 피해 학생들은 1심 패소 후 현재까지 항소를 진행하며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가 된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문제는 결국 최초의 수능 복수정답 문제로 기록됐다.
미궁의 문과 백석의 고향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체제로 변경된 뒤 첫 복수정답 사례는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서 발생했다. 백석의 시 ‘고향’에 등장하는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고르는 문제에서 예문은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이 출제됐고, 이 중 테세우스, 미노타우로스, 미궁의 문, 비밀의 방, 실 중 택일하는 문항에서 정답은 미궁의 문이었으나 전체 수험생의 2/3인 44만 명이 실을 선택했다. 수능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 전례가 없었던 당시 해당 문제의 오류를 처음 제기한 서울대학교 불문과 최권행 교수의 발언에 출제자는 물론이고 문인들과 문학평론가 사이에서 해당 문제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실’을 정답으로 작성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행정소송 움직임이 보이자 평가원은 출제 교수 7인의 자문을 거쳐 미궁의 문과 실을 복수정답으로 인정했다. 해당 논란의 책임을 지고 출제위원장과 평가원장은 대국민 사과 후 사퇴했고, 윤덕홍 교육부총리 또한 대국민 사과 후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수능 사상 최초로 복수정답을 인정한 사례였기 때문에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 이 밖에도 2008학년도 수능 물리II 11번 문제에서 ‘단원자’라는 조건을 누락해 복수정답을 인정한 사례가 있었고, 2010학년도 수능 지구 과학I 19번 문제에서는 일식에 대한 질문에 현실의 일식 날짜가 인용됐는데, 실제 상황에서 일식의 지속시간이 길어지는 현실적 변수가 작용해 실제 현상은 문항의 정답과 일치하지 않아 중복정답이 인정됐다. 지난 2015학년도 수능에서는 영어와 생명과학 문제가 출제오류로 복수정답을 인정해 사상 최초로 복수 정답이 복수로 나온 수능이라는 오명을 떠안은 바 있다.교육제도 개편과 대학의 자율화를 통해 점차 수능이 자격고사화 되어가고, 내신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임에도 여전히 수능이 갖는 무게와 이를 견디는 학생들의 절박함은 날아가는 비행기도 세우고, 경찰차를 총알택시보다 빨리 달리게 하며, 모든 관공서의 업무 시작 시간을 10시로 돌려놓고, 지하철과 버스의 배차 간격을 조정시킬 만큼 중하다. 돈과 권력이 아닌 오로지 실력 하나만 놓고 자신과의 싸움을 펼칠 60만 수험생들에게 온 우주의 기운이 함께하길, 하나의 답을 찾아 떠나는 하루 간의 여정이 값진 시간이 되길 고대한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디지털뉴스룸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