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게도 이제는 용서하기로 한다 침대 위에서는 머리가 반쯤 남은 여자가 자꾸만 혼절하고 나는 그때마다 눈을 감겨 주었다 하나뿐인 눈 새벽의 병원 문은 터지는 흰 꽃처럼 환하고 차들은 그 앞에 멈추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경광등에 절은 병든 나무들처럼 서서 침대 밖으로 팔이 나온다, 더러운 팔꿈치다 어디를 그렇게 가야 했었나 팔꿈치로 걸어간 길 말랑하고 축축한 길은 모두 주름 속에 들어 있다 차들은 자꾸 온다, 다른 높낮이의 절규가 이미 울고 있던 이들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 그는 오지 않는다, 축축한 길의 끝방에서 어지럽고 불길한 밤이라고, 뜨거운 우유를 마시고 있다 감겨 준 눈을 뜨고 자꾸만 버둥거리는 팔, 고통아, 그 팔마저 반만 남기고 잘라서 묘지 위에 꽂아 다오 언젠가 그 팔을 보기 위해 그는 꽃을 들고 찾아오겠지 그렇다면 손을 내밀어 그의 가슴 속에서 나머지 반의 머리를 꺼내 올 것이다 아침에도 다시 새벽에도 찾아오지 않을 그에게 이제는 알겠다고, 알지 못해도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고, 서둘러 용서하고도 다 웃기 전에 굳는 입술로 나는, 겨우 죽는 것이다.
내가 따뜻한 저녁을 먹고 있었을 때, 그녀는 맞고 있었다. 내가 따뜻한 저녁을 먹고 나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때, 그때도 그녀는 맞고 있었다. 내가 뉴스를 보면서 잠시 분개하고 있었을 때, 그녀는 쉬지 않고 맞고 있었다. 내가 젖은 은행잎 위를 걸어가며 상쾌한 가을밤을 산책하고 있었을 때, 그녀는 여전히 맞고 있었다. 그녀는 맞고 맞으면서 "믿을 수 없게도" 용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도록 그녀는 평생 동안 맞아 왔던 거였다. 그렇게 사육당하고 조련당한 거였다. 철저히 완벽하게 은폐된 채로. 그녀가 "혼절"할 때까지 맞고 맞았다는 이야기는 다만 소문이었고 그것도 추문이었고, 냉담이었고 무시였고 침묵이었고 암묵이었고 그러나 공공연한 수군거림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그녀는 "겨우 죽는 것이다". "어디를 그렇게 가야 했었나 팔꿈치로 걸어간 길". 그 길 끝에 눈길을 돌린 내가 있었고 당신이 있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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