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4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 국민 담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달랬는지는 의문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역대급' 어록을 확실히 남겼다는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는 말인데, 담화 직후부터 이를 패러디한 문구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내가 이러려고 OO 했나(됐나)"식이다. "내가 이러려고 생중계를 봤나 자괴감마저 든다"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뉴스보다 재밌는 콘텐츠를 못 만들겠습니다. 이러려고 마케터 됐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대체 언제 완성할까.. 내가 이러려고 그림 시작했나" "내가 이러려고 세금 냈나 괴로워"…. 유명인들도 가세했다. 이외수 작가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라는 말씀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다'로 들리면 제 귀가 잘못된 걸까요'라는 글을 트위터에 게시했다. 코미디언 김미화씨는 "내가 이러려고 코미디언을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면서 "정치가 이렇게 웃길 줄이야"라고 해 '코미디보다 웃기는 정치'에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패러디물들의 메시지는 결국 "내가 이러려고 국민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는, '국민 노릇 하기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자괴감, 괴로움이라고 하지만 분노와 야유의 표현들이다. 대통령의 '내가 이러려고'는 담화 직후 일찌감치 유행어가 될 것으로 점쳐졌다.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담화 직후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히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 것처럼 즉각 '뜨거운(?)' 호응을 얻어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이 말에 이렇듯 '열광'을 보냈을까. 말 자체가 주는 어감도 그렇지만 대통령의 이 말 속에 지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인식, 민심과 동떨어진 '나홀로' 인식이 보인다는 실망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은 두 번째 담화에서 첫 번째 사과(90초)보다 훨씬 긴 9분여에 걸쳐 사과를 했지만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다"면서도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다"고 말해 남의 일 말하듯 하는 특유의 화법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구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박 대통령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읽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했다. 박 대통령의 '내가 이러려고'는 대선 TV 토론에서 "그래서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것을 연상시킴으로써 4년 만에 자신을 추궁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있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내가 이러려고'라는 말 자체에 대통령직에 대한 고루한 인식이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말러의 인간적 독서'라는 트위터리안은 "박근혜는 자괴감마저도 봉건적 사고로 이야기한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는 권력이 자기에게 달렸다고 믿는 왕의 워딩이다. 민주주의를 안다면 '이러라고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 주신 건 아닐 텐데'라고 해야 했다. 이건 민주주의의 ABC이면서 전부이다"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하던 날 갤럽이 발표한 국정 지지도 수치는 5%로, 역대 대통령 지지도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 20만명이 모인 것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총 30만명이 거리로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박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 대한 민심의 반응이다. 오는 토요일(12일)엔 그보다 훨씬 대규모의 집회가 예정돼 있다. 100만명 이상 모일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큰 반전이 없는 한 '내가 이러려고'패러디는 이번 주에도 좀 더 이어질 듯하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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