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에 최순실 게이트까지..'땅에 엎드려 안 움직이는 게 최선'

"직무관련인 만나? 말아?" 명확한 지침 없어 정권 후반기 국정농단 파문까지 불거져 공직자 '복지부동' 심화관계절벽→소비절벽 악순환.."3·5·10 세이프존부터라도 만들어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난달 28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직장인들이 카드와 현금으로 각자의 식대를 지불하고 있다.(아시아경제 DB)

청탁금지법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아시아경제 DB)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 한 달을 지나면서 관계·소비절벽이 심화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조차 헷갈려 하는 청탁금지법은 공직자들의 정권 후반기 복지부동(伏地不動·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도 정당화시키는 모습이다.27일 권익위에 따르면 정부는 28일 '관계부처 합동 청탁금지법 해석 지원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연다. 주 1회 개최 예정인 TF 회의엔 권익위 부위원장, 법무부 법무실장, 법제처 차장이 참여한다. 이는 9월28일 청탁금지법 시행 후 생활현장 곳곳에서 혼선이 나타나고 권익위가 인력 부족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 데 대한 고육책이다.지난 한 달 간 권익위에는 유권해석 문의가 폭주했다. 청탁금지법 시행일부터 25일 오후 6시 현재까지 권익위에 들어온 질의 건수는 공문·메일 질의 1443건, 홈페이지 질의 2438건, 국민신문고 질의 1017건 등 4898건이다. 하루 평균 175건에 달해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데다 권익위의 사안별 대응도 오락가락이라 법 적용 대상자들은 불신의 늪에 빠졌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아직 직무 관련성 부분에서 명확한 지침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다"며 "민원인, 업계 관계자, 기자 등과의 점심·저녁식사는 아예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약속을 전혀 잡지 않는다"고 전했다.앞서 학생이 교사에게 카네이션과 캔커피를 줄 수 있느냐는 기본적인 질문에도 권익위는 "원천적으로 금지된다"고 해 놓고선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라며 애매모호한 의견을 덧붙여 혼선을 초래했다. 경조사비와 관련해선 기존에는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경조사비를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가 최근 "상호 부조의 성격이 강하고 전통적 미풍양속인 만큼 직무 관련성이 있어도 10만원 이하는 허용돼야 한다"면서 매뉴얼을 수정하기로 했다.이에 '복잡하니 아예 안 해버리는 게 낫다'는 법 적용 대상자가 많아지며 애꿎은 전국의 식당과 꽃집 등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우와 해산물 등 고가 음식점은 매출이 급감했고, 연회 예약이 줄어든 특급호텔들은 자구책으로 저가 메뉴를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화훼공판장의 1~24일 거래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22%가량 감소한 196만9000속에 그쳤다. 특히 공직사회는 안 그래도 정권 후반기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진 가운데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파문까지 겹쳐 완전히 얼어붙었다. 권익위 관계자는 "공직자들이 청탁금지법상 직무 관련인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을 필요까진 없지만, 요즘 분위기를 봐선 당분간 이런 관계 단절 국면이 이어질 듯하다"며 "각종 혼란이 수습되고 내년 이후 청탁금지법 판례가 쌓이면 상황 개선의 실마리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한 정부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권익위가 직무 관련성에 관한 명확한 지침을 서둘러 내려줘야 한다"며 "3·5·10(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규정에 대한 세이프존(안전지대)이라도 우선 만들어야 공직자들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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