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출발선의 평등에서 본 상속세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어느 사람이 연간 3억원을 벌어 소득세를 5000만원 낸다고 하자. 그리고 그 중 1억원을 소비했다면 남는 돈(가처분소득)은 1억5000만원이다. 이를 20년 동안 모으면 30억원이 된다. 그가 사망하면 30억원은 자식들에게 상속된다. 상속인들은 상속재산 30억원에 대해 부과된 상속세(평균 10억원 정도)를 공제한 뒤 남은 20억원을 민법 등의 규정에 따라 나눠가진다. 상속인들은 적어도 양손에 20억원의 거액을 쥐고 사회에 진입한다. 이를 두고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논리는 경제 활성화다. 위 상속세 10억원이 고스란히 상속인들 손에 들어왔다면, 이를 소비에 사용할 것이고 따라서 관련 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내지 않은 상속세가 소비로 돌아선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5만원권으로 바꿔 장롱 속에 보관하거나 심지어 조세피난처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큰 기업을 상속받는다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기업 자체를 팔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비해 가업상속공제제도를 둬서 최고 500억원까지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속공제를 많이 해주다 보니, 2011~2015년 사이에 145만명이 151조원을 상속받았는데, 이 중 상속세를 낸 인원은 전체의 2.2%인 3만2330명에 그쳤다고 한다. 상속세제가 빈 껍데기만 남은 꼴이다. 아니 어쩌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이미 고착화돼 대부분의 상속인은 몇 푼 안 되는 재산 정도를 상속받고 있는지도 모른다.반대로 상속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헌법에 규정된 공평부담 원칙에 터를 잡고 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상속세는 재산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하여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그 존재가 헌법에 합치된다고 결정했다(96헌가19). 만일 서울잠실운동장에 젊은이들의 인생 마라톤 출발선이 그어져 있다고 하자. 누구는 성능 좋은 벤츠를 타고 가고 누구는 어깨를 짓누르는 마차를 끌고 가야한다면 기회가 균등한 공평사회라고 할 수 없다.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출발선의 조건이 평등하지 않고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상속인의 98%가 상속세를 부담하지 않는 현행 제도가 과연 조세공평부담 원칙에 맞는지 되물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이 공평-형편이 나은 자들은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의 원칙을 고수하는 한 상속세는 지금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계층 간 소득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통해 출발선의 기울어진 기울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세간의 숱한 의혹을 사고 있는 인물의 딸이 무심결에 내 뱉었다는,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이 예사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부모 잘 만나서 권력을 세습하고 지위도 물려받으며 막대한 재산이 거저 대물림되는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시대를 온 몸으로 껴안고 살아온 민초들이 꿈꾸는 조국의 모습과도 너무 다르다. "우리나라를 세운 선조들이 정치적 힘의 세습을 거부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 힘의 세습을 거부한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5년 상속세법을 개정하면서 한 말이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당당한 용기는 경청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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