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 대안 찾으라' 법원 호통…공은 국회·헌재로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단하고 대체복무제 등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항소심의 첫 판결이 나오면서 국회와 헌법재판소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국회는 현실적으로 대안을 찾아 제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라서 앞으로 진행될 입법 활동에 이목이 집중되는 분위기다.20대 국회 들어 19일 현재까지 대체복무 등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병역법 개정안)은 한 건도 없다. 현행 병역법 88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 대체복무 등의 대안 규정은 제시하지 않는다. 17~19대 국회에서 대체복무제를 명문화하는 개정안이 몇 차례 발의됐으나 대부분 '임기만료 폐기' 처분됐다.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의 확신을 이유로 집총을 수반하는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하는 사람은 대체복무를 신청하게 하고 대체복무요원으로 편입시키자는 게 이들 개정안의 뼈대다. 통과는 안 됐지만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은 긍정적으로 검토됐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2013년 대표발의한 개정안과 관련해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면밀한 검토'를 전제로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국정감사 등 현재 진행 중인 주요 정치일정이 마무리되면 야당을 중심으로 개정안이 속속 발의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현행 규정을 합헌이라고 결정한 헌법재판소는 세 번째 심리를 진행 중이다. 지난 두 차례 심리에선 재판관 7(합헌)대 2(위헌 및 한정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나왔다. 항소심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과 사회 분위기의 변화 등으로 헌재 또한 심리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헌재는 지난해 7월 공개변론 이후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한편 광주고법 형사항소3부(김영식 부장판사)는 18일 김모씨 등의 병역법 위반 사건 재판에서 항소심으로는 처음으로 1심을 뒤집거나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특히 대법원과 헌재의 그간 판결 및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비춰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국제인권규약 등을 근거삼아 이렇게 지적하고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한 "그간 대법원도 '정당한 사유'의 범위에 양심의 자유가 포함될 여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은 채 일종의 '시기상조론'에 기대왔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아울러 "'정당한 사유'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배제하면 병역의무는 완전히 이행하도록 하는 대신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는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결과가 된다"고 일갈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상 대안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국가는 그에 대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민주적 다수의 책임'도 거론했다. 민주주의의 특징이 다원주의, 관용, 포용력이라고 판시한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단 등이 근거다. 재판부는 "다수의 지배를 넘어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통한 법치국가를 실현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과 제도화를 통해 사회통합을 실현할 책임은 그 사회의 '민주적 다수'에게 있다"면서 "이러한 의무를 방기하는 다수는 억압적ㆍ산술적 다수로서 그들이 운영하는 정치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가의 '의무 해태'로 인한 불이익은 국가가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돌려선 안 된다는 게 재판부의 생각이다. 재판부는 정부가 안보상의 특수성을 내세워 반론하는 데 대해선 "국가는 매년 현역병 대상자 가운데 생계곤란을 이유로 1100명 이상씩 복무기간을 단축해주고 보충역에 대해서도 각종 이유로 500명 이상을 제2국민역으로 편입시킨다"면서 "한 해 600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현역병에서 제외하는 게 병력자원 손실로 이어진다는 항변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아직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주장과 관련해 재판부는 "예를 들면 예술ㆍ체육 분야에서의 국위선양 등을 이유로 하는 병역면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반대 의견이 분출됐다"면서 "유독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공감대 미흡을 이유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2000년대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법원이 대부분 실형을 선고하고서도 법정구속하지는 않은 점을 언급하고 "이는 '타협 판결'이다. 떳떳하게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공동체를 위해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종교의 문제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은 지난 10년간 5700여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들 중 5200여명이 병역법을 근거로 처벌 받았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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