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우리나라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나라들을 가 볼 때마다 몇 가지 놀라운 점들을 발견한다. 하나는 그 나라들 대부분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국가들만 하더라도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같은 산유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가 채 안 되는 미얀마나 몽골도 엄청난 지하자원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 그런 나라들이 1인당 국민소득은 낮지만 일부 상류층들은 엄청난 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만 해도 거리에 고급 외제차가 즐비해서 우리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알고 보면 이 나라는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월급이 300달러인 의사가 환자로부터 받는 촌지만 하루에 300달러가 넘을 정도로 비리가 만연해 있다. 이처럼 후진국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부정부패와 비리가 심해서, 자원은 많이 갖고 있더라도 부의 분배가 제대로 안 돼 빈부차이가 심하고, 경제발전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정부패 탓에 중진국의 문턱을 못 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선진국의 문턱을 못 넘고 수년째 국민소득 2만달러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는 후진국형 부정부패나 비리에서는 많이 탈피했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하면 접대나 청탁과 같은 부조리가 사회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부터 시행되는 일명 '김영란법'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 법이 제대로만 정착된다면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크고 작은 권력을 누려온 공직사회의 권력형 비리가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아마도 너무나도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는 법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각종 편법이 난무하고 법 적용에 혼선도 많겠지만, 우리 모두가 의지를 갖고 이 법의 정착을 위해 노력한다면 선진국과 같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이 법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지 아무도 예측하긴 어렵지만, 머지않아 이 법은 과거 지하경제에 철퇴를 가한 금융실명제에 버금가는 파괴력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렇게 강력한 법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국민적 합의가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시행령의 수준을 놓고 눈치를 본 국가권익위원회는 국민의 80%가 이 법을 지지한다는 데에 힘입어 식사, 선물, 경조사비의 상한선을 3만원, 5만원, 10만원으로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부조리와 비리가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김영란 법의 일차 수혜자는 그동안 엄청난 접대비를 써야 했던 기업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으로 기업들이 절감하는 접대비의 규모가 상당할 것이고, 기업들의 이익은 그만큼 증가할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은 이런 이익을 직원들의 복지와 연구개발(R&D) 투자, 동반성장과 사회환원에 더욱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 스스로도 김영란법에 준하는 윤리규범을 만들어 준수해야 한다. 공무원이나 언론인, 교사에게만 청탁형 뇌물을 주는 게 아니라 납품업체도 대기업 담당자에게 뇌물을 줘야 하고 유통업계에도 백화점 입점을 위한 입점청탁 뇌물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업 내에서도 승진을 위한 인사청탁이 만연하고 있다. 직원이 해외출장을 갔다 오면 상급자에게 양주와 같은 고가의 선물하는 것은 비리로 생각조차 안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도 3-5-10상한선에 준하는 내부규정을 만들어 준수함으로써 비리 척결을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고, 특히 영향력이 큰 대기업들부터 솔선수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선진사회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고통분담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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