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한국경제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시장(市場) 자본주의’일 것이다. 개개인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영리추구 행위가 시장 조직을 통해 다양한 가치로 실현되는 것이 시장 자본주의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핵심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수없이 많은 시장 참여자 간에 '공평한 게임'의 룰이 전제돼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하고 권력에 기댄 일방적 독점력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이해당사자 간에 충분히 정보공개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우조선과 한진해운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외형은 분명히 자본주의인데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된 시장이 실종된 데서 비롯된 재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식회사 제도와 자유시장이 성립되기 위한 최대 핵심은 정보의 공개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재무제표는 기업 내부자들뿐만 아니라 주주와 채권단 등 주식회사의 이해관계자들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참고하는 최소한의 기업 정보이다. 따라서 성숙된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회계장부의 조작은 전쟁범죄와 함께 국기를 뒤흔드는 중대 범죄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우조선 사태를 보면 10조원 가량의 회계조작이 8년 이상 지속된 것으로 나타난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감사를 받고 있고 외부 회계감사까지 받고 있는데 어떻게 8년씩이나 분식회계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문제가 되고 있는 대우조선의 두 사장들 모두가 대표적인 권력형 낙하산 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실무자들이 재무제표에 의문이 생겨도 감히(?)어떻게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하게 권력의 핵심 실세와 연결된 낙하산 사장들이다. 한국경제의 문제가 되고 있는 또 다른 진앙지인 한진해운의 경우는 대주주의 셀프 낙하산이 문제가 됐다. 국회 청문회에서 스스로 인정한 대로 경영수업이라고는 전혀 받지 못한 채 남편 뒷바라지를 해오던 최은영 전 회장은 단지 대주주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셀프 공천'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최근 정부나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전 경영진들에게 책임을 묻는데 대해 '사재 출연 강요는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법리를 넘어선 초법적 요구'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면서 '정부가 해양물류라는 안보 차원의 중대한 산업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함께 한다.그런데 그토록 중차대한 해운산업, 국가 안보산업에 대해 최소한의 경영수업도 받지 못한 가정주부가 CEO가 됐을 당시에는 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국회의 셀프 공천은 난리가 나는데 아무 자격도 없는 대주주가 스스로를 CEO로 셀프 공천 하는 것은 왜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는가. 당시 한진그룹이 최 전회장의 한진해운 회장 취임을 반대한 기록이 있는가. 미숙한 경영으로 대형사고를 치고 물류대란을 일으키고 국가적인 망신을 시키고 그걸 국민세금으로 물어내는 사태가 생겨도 무능하면서 개인 잇속을 챙긴 셀프공천 CEO는 면책을 받아야 하는가.미국에서는 이런 경우 수많은 기관투자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우며 채권은행들은 지속적으로 CEO에 대해 경영감시를 한다. 그것이 시장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시장이 아예 없거나 실종됐다.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이 CEO를 낙하산으로 연속으로 내려 보내고 아무 경험도 자격도 없는 사람이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CEO를 셀프 공천해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경제, 룰이 없고 책임질 사람이 없으며 감시와 견제가 없는 자본주의는 진정한 시장 자본주의가 아니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무너진 시장 시스템을 복구하고 기강과 원칙을 세워 제대로 된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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