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여자傳②]12살 소녀인데도 반하지 않는 사내가 없으니…

빈섬스토리 ‘나합’ - 조선말 권력의 애첩으로 살아간 그녀의 길, 아비는 지홍을 숨기고 숨겼건만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객주집에서 요리만 내고 있기에는 살결이 너무 보얗고, 수줍어 살짝 흘기는 눈매는 보는 사람의 가슴이 아리도록 고왔다. 목소리는 새벽 잎사귀에서 절집 종소리에 놀라 구르는 물방울보다 더 곱게 굴렀고 오래 씹은 밥맛보다 달달했다. 이제 겨우 열 두 살인데도 한번 보면 반하지 않는 사내가 없으니, 천한 출신인 아버지 양씨는 이 보물을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숨기기에 바빴다. 주방을 기웃거리는 남정네라도 있으면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어이, 이녘, 무얼 남의 안구석을 들여다보고 난리여?”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 움찔해서 다시 막걸리잔을 들다가도 양씨가 저쪽 자리로 가버리면 다시 혹시 지홍이 치맛자락이라도 볼까 해서 고개를 쑤욱 뺀다. 지홍네 홍어집은 홍어맛도 일품이었지만, 이런 객쩍은 이들 때문에 늘 북적거렸다. 그녀는 인근의 도내기샘이라는 곳에 가서 물을 긷기도 하고 채소를 씻기도 하였는데, 이때마다 사내들이 뒤를 밟아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나주에는 지홍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만든 노래가 민요로 전한다. “나주 영산 도내기샘상추 씻는 저 큰애기속잎일랑 네가 먹고겉잎일랑 활활 씻어나를 주소, 타는 속을 씻게“
지홍의 어미는 불심(佛心)이 깊어 인근의 불회사(佛會寺)에 가끔 딸을 데리고 다녔다. 1500년도 더 된 옛날 마라난타가 와서 세웠다는 이 고찰(古刹)에서 어미는 지홍을 바라보며 걱정하였다. “이제 막 붉은 상사화처럼 피어오른 아이가, 곧 무식한 사내의 손에 꺾여 인생을 발에 닫는 돌멩이처럼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아깝고 서럽도다.” 그러다가 이 절 길목에 있는 연리지(連理枝)에 두 모녀가 다다랐을 때, 지홍이 말을 꺼낸다. “저 두 그루 나무는 얼마나 서로 사랑하기에 저렇게 가지를 벋어 서로 붙어버렸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너도 저런 배필을 만나 다복하게 살아야할텐데...“ ”어머니, 나는 결심한 게 있어요.“ ”결심? 무슨 결심을 했단 말이냐?“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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