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걸 칼럼]경제성장, 사회갈등해소를 위해 국가중장기계획을 수립해야

이용걸 세명대학교 총장

2000년대 초 '우리나라가 선진국인가'라는 질문을 주한 미 상공회의소 회장이 한 경제부처 젊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젊은 공무원은 우리나라를 중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필자도 대학생과 지역 최고경영자(CEO)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대부분이 선진국이라고 대답하는 데에 주저했다. 당시 미 상공회의소 회장은 반도체생산 1~2위, 조선 1~2위, 자동차 5~6위권, 인터넷보급 1~3위, 이러한 위치에 있는 국가가 선진국이 아니면 어떤 국가가 선진국이냐고 반문했다. 왜 우리들은 선뜻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못할까. 아마 아직 우리 경제수준 또는 사회 인프라와 문화 수준이 아직 더 발전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공무원은 국제적으로 개발도상국 또는 중진국으로 인정받아 여러 의무사항에서 면제받고 싶은 심정도 있는 것 같았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눈부시게 경제성장을 이뤘다. 많은 국가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부러워하고 배우고자 한다. 2000년대 중반이후 경제성장률은 2~3%대로 낮아지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 없는 단기간 내 빠른 경제성장을 한 우리나라가 침체 또는 쇠퇴하는 속도도 너무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부에서는 잠재성장률이 이미 낮아졌고 유럽의 많은 선진국에 비해서는 양호한 상황이므로 경제성장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많은 문제점-청년실업, 복지수요증대, 부의 불평등-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률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 특히 국민소득 (플로 측면)은 상당 수준 선진국에 근접했으나 국가 전체의 부의 축적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한 점 등을 감안할 경우 2~3%대의 경제 성장에 안주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또 우리 주력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 미래 먹을거리 산업 발굴은 매우 더디다. 1960~70년대 가발, 신발, 섬유산업에서 80년대 이후 최근까지 조선,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등을 중심으로 주력산업이 발전해왔으나 이들을 이어갈 주력산업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부처별, 민간 기업별로 미래 먹을거리 산업을 발굴하고 있으나 국가 전체적인 역량 집중이 미흡하다. 다만 얼마 전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민관공동으로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9개 프로젝트 등 미래 먹을거리 사업으로 제시한 것은 다소 늦었지만 환영할 만하다. 이와 함께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대한 대응도 체계적이지 못하다. 국가적으로 먼저 충족돼야 할 복지정책과 지원 대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위한 재정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하나 현실에서는 이슈가 되는 복지수요에 대한 찬반 논의만 무성할 뿐, 적절한 지원 및 재원 대책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앞에 당면한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 고령화, 낮은 경제성장률, 늘어나는 복지수요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제가 없을 뿐 아니라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제기되고 있는 여러 과제들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지난 개발연대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1962년에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민간분야의 성장, 시장중심 경제운용 등을 계기로 1999년 제7차 경제개발계획을 끝으로 폐지됐다. 현재 각 부처별로 수립하는 부문별 중장기 계획으로는 국가 전체의 미래모습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부문별 계획간 상충되는 내용도 있을 수 있고 특히 국가재정이 소요되는 경우 이에 대한 적절한 조정 없이 능력 밖의 투자를 전제로 계획이 마련될 경우 실효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과거 국가 중장기 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금융 등을 통해 민간의 투자방향까지 정부가 결정한다는 점이었으나 앞으로 국가 중장기 계획은 미래경제전망과 정부 정책방향 제시 등에 중점을 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 중장기 계획은 첫째, 국가가 당면한 과제도출과 정책방향을 마련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미래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둘째,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학계, 연구소 전문가 등이 함께 함으로써 국민의 의견 수렴이 용이하며 셋째, 국가재정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복지정책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임박한 시점에 대응책을 마련할 경우 이해 당사자 간 의견 충돌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지만 중장기 계획 수립 과정에서 사전에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경우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중장기 계획은 정부 출연연구소나 민간연구소도 할 수 있지만 의견조정, 계획의 실천가능성 등을 감안할 경우 정부가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 이제 국가의 미래 비전과 목표,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과 재정지원 계획을 담은 국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우리 경제·사회를 한 단계 더 도약시켜 나가길 기대한다.이용걸 세명대 총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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