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의 휴먼 피치] 김병지의 은퇴식, 그에 관한 이야기들

김병지 [사진=울산 구단 제공]

[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축구스타 김병지(46)가 축구화를 벗었다. 그는 1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은퇴 소식을 전했다. 그는 "내리막이 아닌 새로운 오르막 길 위에서 기쁜 마음으로 떠난다"라고 했다. 은퇴 후 진로는 고민하고 있다. 지도자와 행정가 둘 중 선택할 것 같다. 은퇴식이 사실 처음에 고민이었다. 김병지의 은퇴 선언 시점은 몰랐지만 의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일부 관계자들은 알고 있었다. 은퇴식 장소와 시점이 마땅치 않았다. 소속팀이 없어서 더 어려웠다. 하지만 은퇴식을 안 한다는 것은 K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 많은 족적을 남긴 김병지에 대한 예우가 아니었다.K리그 올스타전이 좋은 무대였다. K리그에서 대기록을 남긴 김병지의 상징성에도 어울렸다. 하지만 같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올해 K리그는 올스타전을 8월 중에 중국 슈퍼리그와 함께 하기로 진행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같은 조가 되면서 베트남쪽으로 방향을 트는 분위기다. 여기에 김병지 은퇴식 시간을 넣기가 어려웠다. 다른 나라와 하는 것도 그렇고, 시간과 장소가 아직 미정이어서 또 문제였다.국가대표팀 A매치 중 은퇴식도 가능성이 낮았다. 은퇴식을 하려면 A매치 일흔 경기 이상을 뛰어야 한다. 김병지는 예순한 경기다. 기준에 못 미친다. 협회측은 "앞으로 이야기를 일단 해봐야 한다. 본인의 의사도 물어보기도 해야 한다"고 했다. 김병지 외에도 김남일(39)도 아직 은퇴식을 안 해 조율도 필요하다.김현태 FC서울 스카우트팀장(55)은 이런 분위기가 안타까웠다. 그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2002년 한일월드컵 등에서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활약했다. 이 때 김병지와 함께 일했다. 2002년 때 김병지가 월드컵에 뛰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한 그는 "FC서울에 김병지의 은퇴식을 열어달라고 부탁할까도 생각했다"고 했다. 김병지는 2006~2009년 서울에서 뛴 적이 있다. 울산이 실마리를 풀었다. 울산은 김병지가 현역 시절 프로 데뷔, 가장 오랜 기간 뛴 팀이다. 구단은 김병지의 은퇴 소식을 미리 듣고 이전부터 은퇴식 행사를 준비해 왔다. 19일 은퇴 선언을 하자 이에 맞춰 20일 보도자료로 9월 18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정규리그 경기, 동해안 더비에서 김병지의 은퇴식을 한다고 밝혔다.

김병지 [사진=울산 구단 제공]

울산 관계자는 "김병지 선수가 울산과 포항 모두에서 뛰었기 때문에 동해안더비에서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울산이나 포항의 레전드'로 은퇴식을 하는 것이 아니고 화려하지 않아도 한국 축구의 의미 있는 인물로서 다 함께 할 수 있는 은퇴식을 마련해보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연들로 김병지의 동해안더비 은퇴식은 더욱 값진 시간이 될 것 같다. 한편 김병지는 밀양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국비 지원을 조건으로 알로이시오 전자기계고등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훈련 후에는 창원기계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등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프로 데뷔 후 국내 최고의 골키퍼로 성장, 승승장구했다. 1992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시작해 포항 스틸러스, FC서울,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등에서 스물네 시즌을 뛰었다. 그러는 동안 각종 기록을 남겼다. 프로리그 통산 최다경기(706경기) 출전, 229경기 무실점을 기록했고 서울에서 뛴 2004년 4월 3일부터 2007년 10월 14일까지 153경기 무교체 출전했다. 2015년 9월 23일 수원 삼성과의 정규리그 경기(전남 0-2패)에서 45년 5개월 15일로 최고령 출전 기록도 세웠다.

김병지[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골 넣는 골키퍼'로도 유명했다. 김병지는 헤딩슛으로 한 골, 페널티킥으로 두 골을 넣었다. 골키퍼 가운데 가장 득점을 많이 했다. 울산 소속으로 뛴 1998년 10월 24일 포항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울산 2-1승)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넣은 결승골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필드골이었다. 국가대표 수문장으로도 활약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참가하는 등 예순한 경기에 나가 일흔두 골을 실점했다.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유효슈팅 쉰여섯 개 중 마흔일곱 개를 막으며 골키퍼 종합 방어율 2위를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경기는 뛰지 못했다. 뒷머리를 길게 기른 꽁지머리는 트레이드마크였다. "내 뒤에 공은 없다"는 그의 좌우명은 후배 골키퍼들 모두의 철학이 됐다. 김병지는 현역 연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5시즌이 끝나고 지난해 12월 4일 전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새 소속팀을 알아봤다. 7월 이적시장에서도 돌파구가 없자 은퇴를 결정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문화스포츠레저부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