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기자
문경새재박물관의 '옥소고 추명지'
발소리 위에 발소리를 얹고 발소리가 쌓여 발자국이 되고 발자국이 쌓여 길이 된다는 이 생각. 마음이 쌓여 사박거리는 소리를 만들고 자취를 만들고 그것이 길이 되었다는 이 생각. 조선시대 여인 이옥봉이 읊었던 '꿈의 영혼(夢魂)'에 나오는 문전석로반성사(門前石路半成沙)가 떠오른다. 꿈 속에서 워낙 그대 집으로 향하는 길을 자주 걸어 다녔기에, 꿈의 영혼이 걷는 길에도 자취가 난다면, 문앞에 있는 그 돌길은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거라고, 살짝 과장해 보이는 애교가 곱고 아름다웠다. 토끼벼루 벼랑길 또한 처음의 누군가 조마조마하게 걸어갔고 조마조마함들이 쌓여 이윽고 길이 되었을 것이다.조마조마하게 걸어간 사람과 그것을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바라본 사람이 있었다. 그해 겨울에 일어난 일은 그것이었다. 눈이 쌓인 겨울엔 조붓한 토끼벼루가 더 위태로우리라. 사람의 발길 대신 눈발이 그것을 디디며 걸어가는 장면. 고모산을 뒤덮는 대설 속에서 눈발은 벼랑길에 꼿발로 서서 울었으리라. 가서는 안될, 길이었던 그 길을 걸어간 어떤 이의 뒷모습이 찍힌 휘어진 길섶을 오래 바라보며 말이다.길은 막힌 것을 뚫은 자취이며 가고자 하는 마음이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리워하던 눈앞의 행로이다. 좁고 험하고 어려운 길일수록 마음은 더 하다. 안도현은 그 문경 옛길을 '벼랑의 감지 못한 눈꺼풀'이라고 했다. 토끼벼루를 따라 홀연히 가버린 여자 하나가 펑펑 내리는 눈발 속에 눈에 밟히는, 그런 일이 내겐들 왜 없겠는가. 이 감미로운 상심을 안도현은 책임져야 한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