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목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장
지난 2월12일 새벽, 중력파의 최초 발견 소식은 과학계 소식으로는 드물게 우리나라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했던 것도 아닌데 우리 연구진에게 많은 관심과 격려가 쏟아져 국경 없는 과학 연구가 헛된 구호는 아니라는 점을 실감하였다. 이런 중요한 연구가 국내 학자들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진 분도 매우 많았을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에 한국인이 혹시라도 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보지만 과학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노벨과학상은 왜 우리와 인연이 없을까? 이번에 발견된 중력파는 그 중요성을 간파한 미국 과학재단이 40년 동안 중단 없이 막대한 지원을 해 준 결과이다. 재정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지원을 바랄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지원이 가능했던 지원 철학 같은 것은 배워야 할 것 같다. 중력파 연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논문 성과는 우리 식으로 따져보면 형편없다. 모든 논문은 수백 명에서 1000명 가까운 저자 명단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저자 명단은 반드시 알파벳순으로 적게 되어 있다. 이들 중에는 수십 명 이내의 짧은 저자 논문을 여러 편 낸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긴 저자 목록 논문만 내고 있다.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주도 세력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하다. 그래도 이들은 연구비를 잘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몇 년 전에 어느 외국 분을 중요한 평가 심사자 명단에 추천하려고 그분의 최근 논문과 활동을 찾아보다가 추천을 포기해야 했다. 평가자에게 요구되는 최근 주요 업적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최근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는 종종 외국에 비해 한국의 교수나 과학자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질책을 받는다. 사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개인별로 적용될 내용이지 한국 과학자 전체가 연구에 소홀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이다. 어느 나라건 열심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자율적으로 일을 하는지 아니면 일정한 기준을 정해놓고 그에 맞추어 일을 하는지는 연구비 지원이나 평가 시스템에 많이 좌우된다. 연구 계획서나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대학에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각 연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은데 그 분야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별해야 할지 어떻게 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점차 정량적 평가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어떤 기준을 정해 놓고 점수를 매겨 나간 후 좀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계획서를 선정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 방법이 개개인의 창의성을 찾아내는 데는 많은 무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더구나 요즈음은 상위 10% 저널을 정해놓고 이런 저널에 논문을 내면 높은 점수를 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량화의 끝판을 보는 느낌이다. 대안은 있는가. 솔직히 말해 대안은 없다. 그러나 전문 분야는 그 분야 사람들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분야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는 있다. 다른 분야와 경쟁심, 지난친 자기 분야에 대한 충성심 등 때문에 좀 문제가 생기더라도 전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계적인 점수를 매긴 후 이들을 비교하는 방법은 이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혹시 잘못되어 분야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린다고 하면 이를 점잖게 꾸짖을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으며 주변 분야에서의 비판도 건설적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반면 분야 이기주의로 똘똘 뭉치는 것은 그 분야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에서도 라이고(LIGO, 중력파 관측소) 프로젝트 초기에는 언론을 통한 논쟁도 상당히 있었다. LIGO를 비판했던 분 중 한 사람이 내 지도교수였다. 그랬어도 LIGO 프로젝트는 중단 없이 잘 진행되었고 또 그 분이 이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대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중력파 연구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셈이다. 이런 분야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고 즐거움이다. 비록 몇 년 후에 은퇴하게 되겠지만 이 분야에 매력을 느껴 지난 몇 년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미국, 유럽의 연구진과 함께 연구에 매진해 온 젊은 연구자들이 중단 없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형목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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