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순정'서 해맑은 소녀 수옥 연기...순수한 연기로 첫 사랑의 미묘한 감정 그려
클로즈업으로 조명한 이은희 감독 '깨끗함과 순수함 모두 가진 배우'
배우 김소현[사진=윤동주 기자]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첫사랑. 누군가에게는 아렴풋한 기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순정'은 이 아련하고 애틋한 기억을 소환한다. 열일곱 살 소년과 소녀가 겪는 순수하고 아픈 첫사랑을 그린다. 주 무대는 섬마을. 때 묻지 않은 우정 사이에서 가슴 벅차 오르는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 감성을 아름답게 전달하는 데는 화려한 기술이 불필요하다. 고스란히 배우의 몫이다. 이은희 감독(37)은 아역 출신 김소현(17)을 택했다. "깨끗함과 순수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배우"라고 했다.자그마한 얼굴과 긴 생머리. 초롱초롱한 눈 밑의 볼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았다. 가녀린 팔, 다리를 움직이며 다가오면 누구라도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영화 속 수옥은 누구보다 당차다. 장애를 안고 태어나 한 쪽 다리를 절지만 밝고 씩씩하다. 그래서 라디오 DJ가 되겠다는 꿈에 한 걸음씩 전진하고,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김소현은 그런 수옥과 자신이 많이 닮았다고 했다. "친구들과 노는 장면을 찍을 땐 그냥 저였던 것 같아요. 영화에 자극적인 소재가 거의 없잖아요. 정말 행복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재미있게 촬영했죠. 그래서인지 영화에 제 모습이 많이 나와요."
영화 '순정' 스틸 컷
수옥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아픈 몸 때문에 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아픔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범실(도경수)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해야 한다. 김소현은 아직 누군가를 깊게 좋아한 경험이 없다. 하지만 수옥처럼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서 이 감독의 주문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혼자 담아두는 편이에요. 범실을 남몰래 흠모하지만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수옥의 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죠. 특별한 표정을 보이기보다 감성을 물 흐르듯 녹아들게 하려고 노력했어요."이 감독은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내기 위해 클로즈업샷(인물이나 사물을 크게 표현하는 샷)으로 얼굴을 많이 담았다. 배우에게는 크나큰 부담이다. 공간이나 몸의 움직임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 감성을 전해야 한다. 김소현은 과잉된 감정 없이 무거운 임무를 수월하게 해낸다. 사탕을 문 것 같은 볼로 순수함을 보이고 선한 눈웃음으로 범실의 마음을 빼앗는다. 우산을 들고 키스하는 신에서는 찔끔 얼굴을 떨며 첫사랑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그렇게까지 얼굴을 크게 조명할지 몰랐어요. 편집 본을 보는데 제 얼굴이 나올 때마다 어색하더라고요. 그래도 어느 정도 감정이 실린 것 같아 마음이 놓여요."
배우 김소현[사진=윤동주 기자]
섬세한 연기에는 이 감독의 '귀엣말 연출'도 한 몫 했다.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귀엣말로 시나리오에 적히지 않은 연기를 주문했다. 그 덕에 배우들은 한층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김소현은 풋풋하고 설레는 첫사랑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이은희 감독이 경수 오빠와 대화를 하다가 눈가에 먼지가 묻었다고 생각하고 얼굴을 닦아주라고 하더라고요. 웃음을 참고 주문대로 연기했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경수 오빠가 순간 얼어붙더라고요. 그런 주문 덕에 경수 오빠와 빨리 친해지고, 순수한 장면들을 예쁘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김소현은 연기 9년차다. 2008년 KBS '전설의 고향: 아가야 청산가자'에서 아역으로 데뷔했다.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그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생겼다. 촬영장에 가기 전까지 자신의 연기를 80%가량 준비한다. 나머지 20%는 현장에서 배우들을 만나 호흡하며 채운다. 순정은 예외였다. 다른 촬영이 잇달아 30%밖에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소현은 촬영장 안팎에서 수옥으로 지내려고 애썼다. 철저한 자기암시로 마음을 내려놓았고, 상대 배우인 도경수와 끊임없이 대화해 깊은 감정의 고리를 만들었다. 촬영이 끝나도 수옥처럼 다리를 절며 숙소로 이동할 정도였다. 김소현의 어머니 김지연씨(44)는 "하고 싶은 일을 만나면 엄청난 끈기를 보이는 아이다. 어렸을 때 오디션을 보며 많은 아픔을 겪었는데, 그것을 기어코 자신만의 무기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이는 법이 없다. 자기 절제도 강하다. 경쟁한 친구가 오디션에 붙어도 실망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고 했다. 비슷한 질문에 김소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낙방을 반복하는데도 매일 같이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를 찾았죠. '나는 왜 안 될까'라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나중에는 오디션을 앞두고 식은땀이 났죠. 겉은 화려해보이겠지만 누구보다 치열한 길을 걸어온 것 같아요."
영화 '순정' 스틸 컷
김소현은 최근 또 다른 도전을 마주했다.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홈스쿨링을 택했다. 따로 선생님을 두지 않고 인터넷 강의로 한국사를 공부한다. "엄마가 제게 선택권을 주셨어요. 긴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죠. 앞으로도 연기활동을 할 텐데 학업에 전념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에요. 시간이 날 때마다 두루 공부하며 심층적으로 알고 싶은 전공을 찾으려고 해요." 김지연씨는 "자기 절제가 강한 아이라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중학교 과정도 홈스쿨링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교과서로만 공부했는데도 수학과 과학에서 만점을 받았다. 문제의 과정을 알아가는 데 재미를 보이는 아이라서 특별히 관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김소현은 그런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많이 힘드실 텐데 함께 달려줘서 고마워요. 촬영장에서 힘든 일을 겪으면 엄마한테 스트레스를 풀었잖아요. 정말 미안해요.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엄마뿐이었어요. 앞으로는 성숙한 딸이 되도록 노력할게요."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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