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이라는 이름의 방치된 폭력, '아동학대'

아동학대 불감증, 물리적 폭력이 전부 아냐…사회문화·인식개선 등 근본 대책 중요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2014년 7월, 경기도 포천의 한 아파트. '사내아이가 악을 쓰며 울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쓰레기로 가득 찬 곳에 8살 A군이 방치돼 있었다. A군 곁에는 시체 두 구가 들어있는 대형 '고무통'이 놓여 있었다. 친엄마 이모씨는 가끔 빵과 우유를 두고 나올 뿐, A군을 홀로 방치했다. 지난해 12월, 인천 연수구 한 슈퍼마켓 앞. '11살 소녀' B양이 맨발로 돌아다니다 경찰에 발견됐다. B양은 발견 당시 만 4세 평균 몸무게인 16㎏에 불과했다. 앙상한 몰골의 B양은 아버지와 동거녀로부터 2년간 사실상 감금당하고 학대받다가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했다. 아버지는 '게임'에 빠져 B양을 방치했다.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부천 초등학생(사망 당시 7세) C군 '시신훼손' 사건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11살 맨발 소녀' 사건이나 포천 '8살 남자아이' 사건처럼 엽기적인 아동 학대 사건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DB

아동학대는 '천륜(天倫)'을 거스른 일부 부모의 사례로 생각하기 쉽지만, 하루 평균 15건의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끊이지 않고 있다. 2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한 아동학대 사건 건수는 총 9만5622건에 달했다. 신고 건수 중 실제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사례는 10년간 5만5484건으로 하루 평균 15.2건이다. 가정교육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풍토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선진국은 아동학대를 심각한 폭력으로 규정해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1933년에 아동학대 범죄를 연령별 행위별로 분류해 처벌 규정 등 조문을 구성했다. 다른 나라도 학교 무단결석 등 아동학대 의심 상황이 발생하면 엄중하게 대처하는 분위기다. 미국이나 독일은 아동이 학교에 수차례 무단결석하면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등 책임을 묻고 있다. 아동학대를 둘러싼 사회적 풍토는 한국과 선진국의 차이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면 경제력만 높일 게 아니라 사회·문화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물리적인 폭력만 아동학대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전혀 다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이 가정폭력을 목격하게 하는 행위도 학대"라면서 "불결한 상태나 위험한 상태에 아동을 방치하는 것도 학대의 한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강력한 처벌이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지만, 면피용 대처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국에 아동학대와 관련한 강력한 처벌 조항이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게 문제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2014년 9월 이미 시행됐다. 아동에게 중상해를 가하면 징역 3년 이상에 처하는 조항(제5조) 등 처벌은 강화하는 추세다. 법은 만들었지만, 실질적 대책은 뒤따르지 않고 있다. 전국의 시·군·구 가운데 아동복지법에 의무사항으로 규정된 아동 관련 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터지면 백화점식 대책만 발표할 뿐 후속대책은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대 법대 이호선 교수는 "아동학대 문제에서 법은 사후적이고 보조적인 것이다.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아동학대 심각성에 대한 인식 변화 등 체질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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