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좌익효수 은폐 논란, 법과 원칙대로 했더라면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등 국내정치 개입 의혹 관련 수사 일부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대선 전후 온라인 상에서 ‘좌익효수’란 필명으로 정치 관여 활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 A씨 외에도 검찰이 다른 국정원 직원 3명을 더 조사했지만 정식 수사엔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했다. 수사 관련 논란이 일 때마다 등장하는 ‘법과 원칙대로’라는 표현만 존중했더라도 조금은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을까. 2013년 6월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법정에 세우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을 인정한 여파는 작지 않았다. 보고 계통을 따라 정부까지 흘러 간 수사 관련 보고서가 수사결과 발표보다 앞서 대중에 공개되면서 수사팀을 존중한 검찰 수뇌부가 조직 내부를 단속해야 할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고, 취임 일성으로 ‘외압으로부터의 방파제’를 자임하던 검찰 수장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한 달도 안 돼 수사팀장이 직무에서 배제되며 팀이 와해되는 모습도 보였다. 검찰 안팎 풍파와는 별도로 국정원도 순탄치는 않았다. A씨는 일부 공개된 국정원 직원 의심자들의 댓글 활동 내역을 토대로 누리꾼들이 그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긴 특정 지역·정당 비하 게시물이나 인터넷 방송인 가족에 대한 모욕적 언사 등을 추가로 찾아내며 결국 고소·고발됐다. 검찰에 따르면 수사팀은 2013년 7월 A씨와 함께 추가로 국정원 직원 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후 이들을 다시 부른 적도 없지만 결론을 내는 데는 꼬박 2년4개월여가 걸렸다. 검찰은 지난해 11월에야 A씨를 기소했고, A씨는 첫 공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며 ‘정치적 의견을 밝힌 것에 불과하다’며 정치관여 관련 사실관계를 스스로 인정했다. 당초 A씨가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발뺌하던 국정원도 그를 대기발령했다. 다만 나머지 국정원 직원 3명은 입건되지 않았다. 이들이 2012년 대선 당시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다수의 글을 남겼지만 정치관여로 볼 여지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활동무대가 지닌 평소 성격, 진술거부 권유 등 당시 검찰 수사에 대한 국정원 측의 태도 등을 감안할 때 석연치 못하다는 평이 줄을 잇는다. 검찰 말마따나 혐의점이 뚜렷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관여 활동은 직위를 이용해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지지·반대 의견을 퍼트리거나,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찬양·비방 의견·사실 등을 유포하는 경우 등이다.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 정치자금 조성 지원 등은 당연히 처벌대상에 포함된다. 국정원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공무원에 대해 이 같은 행위들을 종용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상부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 면피 수단도 안 통한다. 위법한 지시에 대해서는 이의제기 후 고쳐지지 않을 경우 따르지 않아도 되고, 이를 신고해도 법이 지켜진다면 국정원직원법상 비밀엄수나 불이익 조치로부터 자유롭도록 보장하고 있다.검찰은 3명을 입건하지 않은 배경을 두고 “불법선거운동에 해당되느냐 마느냐는 선거 관련 글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해명했다. 내용을 파고 들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정치관여 외관은 있다는 것인데 정식으로 수사 대상에 올리지조차 않은 것은 매끄럽지 않다.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게시물의 내용이 직무 수행 등과 무관해보였다거나 하는 설명은 따로 없었다. 오히려 고소·고발로 불거진 A씨만 사법처리하고 적당히 덮고 지나가려 한 것 아닌가 의심을 사기 좋다. 원 전 원장 등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에 외압이 가해진 정황이 폭로된 마당에는 더더욱 그렇다. 심리전단 소속이 아닌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 관여마저 인정되면 선거 국면에서 국가기관이 보인 전면적 일탈은 더욱 부각되고, 그 부담은 결국 수혜자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A씨의 모욕 혐의 관련 국가배상소송에서 법원조차 A씨가 국정원 직원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았는데, 세간에 드러나지 않은 국정원 직원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란 어려웠을 터다. 굳이 따르지 않아도 문제될 것 없고, 넘치는 업무량에 현실적으로 지키기도 어렵다지만 원칙을 감안했으면 어떨까. 형사소송법은 고소·고발로 접수된 사건에 대해 3개월 내 수사를 마치고 그 처분을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법률전문가인 검사들 중에서도 엘리트로 꼽히는 검사들이 즐비한 서울중앙지검에서 2년 넘게 법률검토에 매달렸으리라 보는 시각은 흔치 않을 것이다. 보수단체 등이 정부에 낸 청원이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 청구까지 이어지는 데도 1년 반이면 충분했다. 한편 국정원댓글 특별수사팀장이 직무에서 배제된 뒤 2013년 10월 말부터 빈 자리를 메워 뒷수습을 책임졌던 이정회 당시 수원지검 형사1부장은 현재 올해 총선 관련 등 주요 공안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를 맡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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