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악당 구분없는 '피범벅액션'…데뷔작 '저수지의 개들'과 서술방식 판박이
'헤이트풀8' 스틸 컷
광활한 눈밭으로 보여준 암울한 서부…8인의 긴장감 담아낸 영상은 볼만해[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쿠엔틴 타란티노(53)의 영화는 다채롭다.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전개, 강렬한 폭력 묘사, 비속어와 잡담이 난무하는 대사 등으로 복수의 장르를 아기자기하게 묶는다. '저수지의 개들(1992년)', '펄프 픽션(1994년)', '재키 브라운(1997년)', '킬 빌(2003년)' 등이 그랬다. 지난 7일 개봉한 '헤이트풀8'도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스릴러인데 배경과 등장인물이 스파게티 웨스턴이다. 영웅과 악당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의도 명분도 없다. 전작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년)'도 스파게티 웨스턴이 뼈대였다. 그런데 영웅과 악당이 분명하게 나뉘었다. 현상범 사냥꾼 장고(제이미 폭스)가 흑인 노예를 착취하는 백인 농장주 캘빈 캔디(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단죄하는 내용이었다. 흑인 영웅이 등장하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요소를 가져와 미국이 진정한 정의를 이루려면 피부 색깔과 정치적 노선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타란티노는 그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흑인을 비방하는 단어인 'nigger', 'negro' 등을 영화에 100번 이상 넣었다. 모멸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해 갈등을 증폭시키고 선혈이 낭자하지만 코미디가 섞인 액션으로 관객에게 쾌감을 전했다.
'헤이트풀8' 스틸 컷
'헤이트풀8'은 그 연장선이다. 헌법해석과 노예제도 시비, 지역 간 이해 대립에서 촉발된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정치적 공기를 담았다. 서술 방식은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과 판박이다. 인물 여덟 명을 '미니네 잡화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몰아넣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로 두 시간 가까이 긴장을 조성한다. 캐릭터들은 '저수지의 개들'처럼 서로 누구인지 모르고, 대화가 오고가지 않아도 큰 일이 터질 것 같이 위험해 보인다. 교수형 집행인(커트 러셀), 현상금 사냥꾼(사무엘 L. 잭슨), 죄수(제니퍼 제이슨 리), 보안관(윌튼 고긴스), 연합군 장교(브루스 던), 이방인(데미안 비쉬어), 카우보이(마이클 매드슨) 등이다. 타란티노는 이들이 정치적 성향 등 서로를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이유를 드러내면서 특유의 '피범벅' 액션으로 연결한다. '저수지의 개들'과의 차이는 범인이 경찰 끄나풀이냐, 독살범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헤이트풀8'은 타란티노의 영화치고 새롭지 않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전문 분야인 갇힌 공간, 음모와 배신을 누구보다 잘 그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데 머문다. 대사가 가장 아쉽다. 평균 59.8세의 배우들을 한데 모았지만 생각만큼 맛이 원숙하지 않다. 그들의 깊이 있는 표정 연기로 상쇄되는 면이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만든 비속어와 잡담의 틀을 깨지 못한다. 또 다른 강점으로 꼽히는 액션도 다르지 않다. 짜릿한 쾌감을 전하지만 '킬 빌'에서의 보여준 무게감이 없다. 그는 '킬 빌'에서 극 후반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와 빌(데이빗 캐러딘)의 끈적거리는 과거 회상을 넣어 복수의 묘미를 배가했다. 그러나 '장고: 분노의 추적자' 등 이후 작품에서는 선혈을 한 트럭 퍼부을 뿐 이전의 농익은 시선과 담을 쌓았다. 여전히 훌륭한 영화들을 생산하지만 많은 영화 팬들이 생각하는 트렌드 세터(시대의 풍조나 유행 등을 선동하는 사람)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헤이트풀8'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그래도 필름 한 장 한 장에서는 그만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벤허(1959년)'에서 전차 신을 촬영할 때 쓰인 울트라 파나비젼 70을 사용했다. 이 카메라는 와이드 화면을 촬영하거나 영사할 때 필요한 애너모픽 렌즈를 사용하면 화면비율을 2.76:1까지 늘릴 수 있다. '바운티호의 반란(1962년)', '매드 매드 대소동(1963년)', '위대한 생애(1965년)', '발지 대전투(1965년)' 등에 사용됐다. 타란티노는 이 카메라를 이용해 광활한 눈밭을 배경으로 한 암울한 서부극의 배경을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이 카메라가 더 놀라운 기능을 발휘하는 신은 '미니네 잡화점' 내부다. 공간이 넓게 비춰져서 인물 한 명을 조명해도 뒤에 있는 여러 인물의 표정과 동선이 함께 나타난다. 관객이 여덟 명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서스펜스를 갑절로 경험하게 한다. 이 장면들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폐쇄 공포감마저 준다. 반대로 인물을 가까이서 찍을 때는 얼굴이 넓은 화면을 가득 메워서 관객과 캐릭터 사이가 확 줄어든다. 관객은 베테랑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에 몰입해 167분이나 되는 상영시간을 지루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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