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시민 안중에 없나'…정부·서울시 사사건건 충돌

최근 현안 두고 잇딴 갈등...임승빈 명지대 교수 '정부 부처 지나친 정치적 접근이 문제...서울시도 사전 협의 더 충실해야'

박원순 서울시장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최근 서울시와 중앙 정부가 사사건건 충돌을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시비비를 떠나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소모적인 '정치적 충돌'을 자제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최근엔 국가보훈처의 광화문광장 대형 태극기 설치를 둘러 싼 갈등이 터져나왔다. 보훈처와 시는 일단 사업 자체엔 동의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6월 초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자문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세부 사항에서 의견이 엇갈리면서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보훈처는 당초 올해 8월15일 광복절 70주년 기념식을 즈음해 최대 높이 70m 높이의 게양대를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뒷편(정부서울청사 맞은 편)에 '영구적'으로 설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등을 거쳐 수정안을 제시했다. 우선 설치 장소를 광화문 광장 옆 시민열린마당으로 변경하자는 입장이다. 국가 상징물 격이고 주요 문화재ㆍ관광 명소인 경복궁 정문을 대형 태극기가 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함께 설치된 부속 조형물 등이 시민 통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어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또 여러 상황을 감안해 한시적으로만 설치하자는 입장이다. 광화문광장이 시민들에게 항시 열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한시 설치가 바람직하고, 시민열린마당에선 2017년 3월 이후 옛 의정부 청사터 복원 공사가 시작된다. 선진국가의 도시 중심에 대형 국기가 영구적으로 게양된 사례가 거의 없고, 일부 시민들의 거부 정서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이런 논란이 길어지면서 당초 예정됐던 광복절 설치는 무산됐다. 시는 이후 "시민열린마당에 한시적으로 설치하되, 영구적으로 설치하려면 정부서울청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정부시설 부지에 설치하라"고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반면 보훈처는 원안을 고수하면서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다. 그러던 중 보훈처가 15일 국방부 기자실 브리핑을 통해 먼저 공세에 나서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보훈처는 "서울시가 사실상 반대해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지만 행정 구제 신청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반드시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영구적으로 게양하겠다"며 "박원순 시장만 동의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시도 당일 즉각 보도자료를 내 반박했다. 시는 "우리는 반대한 적이 없다"며 "고 보훈처가 원안만을 고수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시 관계자는 "해당 사업에 대한 의사 결정은 박 시장이 아니라 시민을 대표한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논의해 결정한 것"이라며 "보훈처가 우리를 향해 '색깔론'을 제기하려는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는 이와 함께 최근 행정자치부와 지방교부세 삭감을 놓고도 갈등을 빚고 있다. 행자부는 지난 14일 내년에 서울시로 배정될 지방교부세를 53억원 가량 삭감했다. 시가 감사원의 '2014년도 기관운영 감사'에서 2010~2014년까지 5년간 업무추진비 52억1900만원을 부당 지급했다는 지적을 받음에 따라 패널티 차원에서 자체심의위원회를 열어 삭감을 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시가 행자부의 예산편경지침을 어기고 정무수석비서관(4급 상당), 4급 서기관(과장), 5급 사무관(팀장)들에게 업무추진비를 지급한 것에 대해 '부당 집행'이라고 지적했다. 행자부는 한술 더떠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에 따라 감사원이 지적한 업무추진비 부당 지금액의 5배 범위 내(약 52억~260억원)에서 2017년부터 업무추진비 편성 기준액을 삭감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시의 교부세, 업무추진비 삭감 총액은 최대 312억원에 달한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 사진=아시아경제DB

그러나 시는 이에 대해 "지나친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시는 정무수석의 경우 지급된 돈을 회수했고 4급ㆍ5급 업무추진비도 1월부터 주지 않는 등 처분요구를 다 이행했는데도 지방교부세까지 삭감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시는 특히 그동안 정부가 타 시ㆍ도에 비해 조직 규모가 큰 '대도시' 서울의 특수성을 인정해 4급은 1996년 이전 국무총리실 지침ㆍ1997년 이후 행자부 공문을 통해 특례를 인정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5급도 사실상 시 조례상 직책급 업무 추진비를 지급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시는 감사원도 그동안 10여년간 수차례 감사를 하면서도 지적하지 않았다가 지난해에서야 처음으로 문제를 삼고 처분요구까지 하니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시 일각에선 최근 박 시장이 정종섭 행자부 장관과 '청년 수당'을 놓고 국무회의 자리와 SNS를 통해 격한 설전을 주고 받았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예산을 무기로 군기잡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행자부가 일체의 소명과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삭감을 발표했다"며 "10여년간 아무 문제가 없이 관행화됐던 업무추진비를 갑자기 문제삼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한편 시는 박 시장 취임 후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서울역 7017 프로젝트), 청년 수당,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편성,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수습 등 주요 현안을 놓고 정부와 잇단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들이 야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가 서울시장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사안을 접근하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서울시도 행정권한이 있더라도 사안을 결정짓기 전에 중앙 정부와 좀더 협의를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이어 "예견된 갈등이지만, 각자 법적ㆍ행정적으로 보장된 상대방의 권한을 존중한다면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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