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km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아들 재민군과 함께 산티아고 대성당을 지나는 신동욱씨 (사진 제공 = 신동욱)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말이다.아들과 함께 이혼여행을 떠난 신동욱(34)씨도 자신을 되찾고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했다.지난 7월 한 인기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이혼여행을 떠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혼과 여행이라는 다소 낯선 조합, 4살짜리 아들을 캐리어에 매고 800km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을 택한 이 남자가 궁금해졌다.▲간단한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안녕하세요. 저는 34살 신동욱입니다. 지형도제작, 건축외장설계, 수입차 영업 등의 일을 하며 살아온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이혼하기 전까지는 아내의 권유로 9개월 정도 제빵일을 했었고 이혼을 결심하면서 그 일은 관뒀습니다. 이혼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바꿔보고 싶어 저의 4살짜리 아들 재민이와 이혼여행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혼여행'이 특이한데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27살 첫 직장을 갖게 되면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것은 돈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늘 실패였고,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내를 만나게 됐고 아들 재민이를 갖게됐죠.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의 불화로 이혼을 하게 되면서 하고 있던 제빵일도 싫어졌고 제가 처한 현실도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혼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피로가 많이 쌓여 있어 한 번 크게 비워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려던 일마다 잘 안되니 자신감도 많이 없어졌구요. 이런 것들을 여행을 통해 채우고 싶었습니다. ▲특별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목적지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이혼이야기를 듣고 며칠간 현실을 부정하며 혼자 지냈습니다. 대화를 해도 좁혀질 기미가 안보였고 결국 모든 걸 단념한 날 저녁,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떠나자' 였습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산티아고 순례자길이 떠오르더군요. 딱히 이곳을 알아보거나 한 것은 아닌데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제가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또 걸으면서 많은 것을 길 위에 버리고 오고 싶었습니다. 또 살면서 계획을 제대로 성취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계획만 하다 흐지부지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산티아고는 완주하면 완주증을 주기 때문에 명확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완주증을 받으면 저 스스로에도 훈장이고 아들 재민이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아이와 함께 할 결심을 했는지-우선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집에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데리고 가기로 했어요. 또 '더 로드'라는 책을 보면 아이와 아버지가 늘 길 위를 걷더군요. 저 역시 아들과 걷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아이와 함께 서로 의지해가면서 살아야 하는데 예행연습을 하고 싶었습니다. ▲800km를 아이와 함께하는 게 힘들지 않았는지-아이와 함께 해서 가장 힘든 것은 매일 아침 아이와 제 짐을 싸서 짐 하나는 다음 목적지로 붙이고 저는 자는 아이를 깨워 칭얼대는 것을 달래주며 캐리어가방에 태우는 것을 반복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일정이 끝나면 다른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지만 저는 가방위에서 힘들었을 애를 동네 놀이터 찾아가 놀아주고 아이랑 씻고 하면 일기 쓸 체력이나 시간도 없이 바로 잠들고 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습니다.또 아이랑 함께 다니다보니 잘 때도 벽에 붙은 침대가 아니면 아이가 떨어질까 노심초사 하느라 잠을 깊이 못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후반부에는 등이 많이 아파 진통제를 먹어가며 걸었어요. 약을 먹고 얼마 안됐을 때는 약효가 안 들어서 아이가 말을 걸거나 장난을 걸면 제대로 받아주기 힘든 정도였어요. 매일 아이와 대화하고 아이를 받아 줘야 하는 것이 이렇게 까지 힘든 줄 몰랐어요. 정말 가정주부님들이 대단하다 느꼈습니다.다행인건 아이가 더 어렸을 적부터 2년간을 캐리어로 같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위에서 생활을 잘 해 줬습니다. 아이에게 감사 할 뿐입니다. 3살 정도의 아이가 가방위에서 저렇게 잠을 잘 자고 오래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늘 신기해했을 정도로 아이가 잘해줬어요.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이 아이의 무게 때문에 단순히 무거운 것 이상으로 힘이 들어요.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아는지 늘 뒤에서 잘 있어주었어요. 순례자길을 걸으면서 아이의 웃음을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 싶더군요.
카미노 마지막 자치지역인 갈리시아의 이정표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씨와 아들. (사진 제공 = 신동욱)
▲여행 과정이 궁금해요-이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왔습니다. 여행비용은 돈을 모아서 오면 또 계획만 하다 끝나 버릴 것만 같아서 친구에게 신세를 졌어요. 저와 재민이는 수많은 순례자 길 중에서 프랑스길로 걸었습니다. 계획은 따로 짜지 않았어요. 길 위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기간을 넉넉하게 잡고 천천히 걷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있어 더욱더 계획대로 움직이기 보다는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보통은 30일정도 잡는데 저는 40일 가량을 잡고 걸었어요. 숙식은 길 위에 숙소나 바, 카페, 레스토랑이 꾸준히 있고 안내해주는 어플이나 책이 있어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었어요. 길 위에서 귀동냥해서 들은 정보들도 적지 않았구요. 숙박 비용은 하루에 보통 5~10유로였습니다. 아이와 한 침대에서 잔다고 하면 보통은 1인 비용만 받았습니다. 알베르게라는 곳이 적게는 8명 많게는 100명이상이 한 장소에서 2층 침대를 이용하여 잠자는 곳인데 다행히 아이가 사람 많은 곳을 가리지 않아서 그 곳에서 잘잤어요.식사는 아침은 보통 시리얼에 빵과 소시지, 과일 점심은 보통 식당에서 5유로 정도에 해결을 했고요. 저녁은 해먹거나 일행들과 셰어하면 2~5유로면 되었고, 식당을 가게 되면 10유로짜리 순례자를 위한 메뉴를 먹었습니다. 아이와 제 짐을 다음목적지로 옮겨주는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지역에 따라서 3~7유로로 매일 지출 했습니다. 남들보다 빨래도 2배가 나오고 가방에 매달고 말리며 다닐 여유가 없어서 보통은 매일 세탁기와 건조기를 많이 이용 하면서 왔습니다. 보통 하루 지출을 20~30유로 잡는데 저 같은 경우 하루에 50유로 전후로 사용 한 듯 합니다.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요?-후반부였던 폰페라다라는 도시에서는 전립선염이 걸려서 다음도시까지 택시타고 이동해서 순례자를 위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정말 그때는 괴로워서 걷기는커녕 누워있기도 힘들더군요. 이때는 길 걷는 것을 그만 두고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상태로는 아이 보는 것도 안 되겠다 싶더라구요. 다행히 약을 먹고 하루를 쉬니 다음날 걸을 때는 참을 만 하였습니다. 그날 아이에게 아빠가 아파서 재민이가 조금만 혼자 놀아 달라하고 호텔에서 잠시 쉬었는데 시계를 보니 아이가 3시간이나 혼자 잘 놀고 저는 잠을 잤는데 아이에게 어찌나 고맙던지요. 또 한번은 정확하게 어느 지역인지 모르겠지만 부르고스라는 지역을 지나서 아이가 베드버그에 물려 거의 잠을 못자고 힘들어했어요. 이 모습을 볼 때 여행을 하면서 아이에게 가장 죄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때보다 몇 배나 아이를 고생시킨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말해주세요.-저는 신혼여행으로 네팔 안나 푸루나 트래킹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을 위해 샀던 등산화를 신고 이혼여행을 떠났습니다. 800km를 걷는 여정이니 신발이 갖는 의미가 크게 오더라구요.그런데 여행이 끝나기 몇 일전부터 신발이 신경이 쓰이더군요. 다들 피니스테라에가서 자신의 짐을 태우는데 저는 신발을 태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묵시아까지 걸어가야 해서 피니스테라에서는 태우지 못하고 묵시아(원래는 산티아고까지 걷는게 맞는데 피니스테라를 지나서 묵시아까지 120km정도를 더 걸었습니다)에 가서 신발에 짧은 메세지를 적고 바다에 던져 버리고 왔습니다.
신 씨와 아들 재민군의 셀카. (사진 제공 = 신동욱)
▲이혼여행을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처음 여행계획을 짰을 때부터 여행을 가는 것 자체가 저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런 여행을 처음 해보는 만큼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길 위에서 버리는 연습을 하며 마음의 짐을 많이 비워 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을 다 하고 나니 이혼에 대해서 확신이 생겼어요. 이혼을 되돌릴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아이와 잘 살자고, 아이엄마도 그냥 보내 주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여행하듯 아이랑 지내면 충분히 아이와 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 잘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가 많긴 하지만 4살 아이를 업고 순례하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그 덕에 다른 순례자들이 많이 신기해하고 유명세를 탔죠. 사람들과 사진도 많이 찍고 말도 먼저 걸어와 대화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길 위를 걷는 동안 나눈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사연은 제 삶을 더 풍부하게 해줄 것 같아요. 아이가 별을 보고 놀라워하고 지평선, 무지개를 처음보고 다양한 곤충이나 동물들을 접하고 길 위에서 딴 사과, 옥수수를 먹으며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은 제가 여행을 하며 한 어떠한 생각이나 경험보다 큰 이 여행의 결실이라 생각이 드네요.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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