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뒤지면저렇게 작은 지구 여러 개 있다.지금은 64억㎞를 지나와서…내 얼굴에 있는 점을 본다.멀리서 나는 본다.까마득한 거리내 얼굴의 점 하나를 보기 위해선얼마나 많은 거리를 비행한 다음이어야 하나흘러와서 점 하나 쯤 남기고우주 저편으로 떠도는 동안내가 거울 앞에서 고개를 돌려 내 점을 언뜻 보는 순간이64억㎞의 거리를 지난 시간이라는 사실적어도 내 점 하나에는 수 천 명의 이름이 들어있다.무거워, 얼굴을 나누며 오고 간다.그 먼 밖에서 나를 보고 있었으니겨우 고작, 이라는 말 배워서 가끔 써먹고 있을 뿐이었지.거울을 보면이미 오래전에 나는나를 지나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둥둥 떠 갈수록 나와는 영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오늘은 눈이 내리고지구는 여전히 헛바퀴를 돌고 있다.-박해람의 '창백한 푸른 점'칼 세이건은 64억㎞ 바깥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했다. 깨알만큼 작은 그 푸른 점이, 시인 박해람의 얼굴 위에 올라와 앉을 때 시적 충동들이 쿵쿵대며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내 얼굴 위에 있는 점이 우주 속에 떠돌고 있는 지구별로 보이기 시작할 때 얼굴은 천체만 해지고 살 속에 반쯤 박혀있는 별들은 신비하고 아름답다. 얼굴에 둥둥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 별들을 무심히 지나쳐왔듯 나는 나를 여러 번 지나쳐와 버렸고 다시는 그때의 나를 만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크기와 거리와 시간에 대한 굳은 관념을 깨며, 상쾌한 우주의 민낯을 찾아 보여준 시인이 참 멋지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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