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나이는 숫자다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이 미국에서 개봉하자마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과문한 탓에 외국 영화감독이라면 반사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떠오르는 수준이지만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새삼 살펴보니, 대단하다. 수많은 작품들을 찍었지만 그 중에서도 '에일리언' '글래디에이터' '블레이드러너' '델마와 루이스' 등 대부분 알만한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그는 1937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하면 79세. 여든을 앞둔 나이의 노인이 우주와 화성을 무대로 한 대작 영화를 만들어 전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때론 객기로 치부되기도 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묵직하게 해준다. 배우로서는 지난 6월 별세한 크리스토퍼 리가 노익장의 압권이다.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 올드팬들이라면 '드라큘라'로 기억될 배우다. 살아온 궤적은 출연했던 영화만큼이나 극적이다. 젊은 시절 2차대전에 참전했고 전후 오랜 조연 생활을 거친 끝에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호러 영화에 단골 출연했다. 1958년 드라큘라를 연기하면서 명성을 얻게 됐다. 톱스타는 아니었지만 195㎝의 큰 키에서 풍기는 압도감은 독보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최고령 배우가 됐다. 반지의 제왕에 출연할 때 이미 80세를 넘겼으며 후속작인 '호빗'시리즈에서는 90세에 가까운 나이였다. 가장 놀라운 것은 가수 경력이다. 84세에 음반을 발표하고 4년 후에는 무려, 헤비메탈 음반을 냈다. 88세의 헤비메탈,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버리지 않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한국에는 임권택이라는 거장이 있다. 거장이라는 수사가 너무 잘 맞는 임 감독은 리들리 스콧보다 한 살 많은 80세다. 그는 스스로 "수렁에 빠져든 느낌이었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김훈 작가의 '화장'을 영상화하는 데 '성공'해 올해 동명의 영화를 개봉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영화 일을 하다 죽고 싶다. 지지부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했다. 섬뜩하리만큼 살아 꿈틀대는 노감독의 열정이 느껴진다. 물론 모든 이들이 80~90대까지 현역으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의 선을 그어놓고 조로(早老)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가장 두려운 것은 안주(安住)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그러자고 있는 게 아니다.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her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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