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현장]감사받는 감사관이 감사하는 奇풍경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고등학교 성추행 사건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교장을 포함한 남자 교사 5명이 2년여간 동료 여교사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추행, 성희롱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만 130여명에 달한다. 이것도 지난달 한 교사의 민원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규모가 큰 데다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성추행이 자행돼 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부랴부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감사에 나섰다.그런데 이 와중에 뜬금없이 시교육청 감사관실이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됐다. 감사관과 감사관실 직원간 비리의혹 폭로전이 확대되면서 엄정하고 공정한 감사가 어렵다는 판단에 12일 시교육청이 감사관실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요청한 것이다. 감사관실 직원들은 K감사관이 성추행 고교 피해 여교사 면담에 앞서 음주를 했다는 사실과 함께 29년 교직생활을 한 감사관실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K감사관은 "개방형 직위로 온 자신을 음해하려 하는 것"이라며 "감사관실 직원 일부가 사학 유치원 비리를 은폐하려 했다"고 맞불을 놨다. 감사관실이 내홍을 겪으면서 사건의 본질인 최악의 학교 성추행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지지부진해지자 시교육청이 고육지책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K감사관을 성추행 고교 감사 책임자로 둔 채 일부 직원만 바꿔 감사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 인해 K감사관은 자신에게 제기된 음주감사ㆍ성추행 의혹의 가해자로 감사를 받으면서 고교 성추행 사건의 감사 책임자로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이중 삼중의 감사가 이뤄지게 된 셈이다.하지만 이런 과정은 씁쓸함을 남긴다. 성추행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교육현실부터가 그렇지만, 엄정하게 지도감독해야 할 공무원 조직이 내분으로 인해 진상조사와 처벌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성범죄가 일종의 '문화'가 돼버린 학교현장에 대한 철저한 감사와 조치가 우선인 상황이다. 이러는 동안 가해자들이 웃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섬뜩하다.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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