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일 때 ①면을 먼저 넣는다 ②스프를 먼저 넣는다, 당신의 선택은. 답은 뻔하다. 십중팔구 2번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근거가 친절하게 펼쳐진다. "스프를 먼저 넣으면 끓는점이 높아진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데 스프를 넣으면 100도 이상에서 부글거린다. 더 높은 온도에서 면이 익으니 쫄깃쫄깃하다." 라면 봉지가 이의를 제기한다. 봉지 뒷면의 레시피를 통해 '끓는 물에 면과 스프를 넣는다' 또는 '면을 넣고 스프를 넣는다'고. 이 레시피가 무엇인가. 불철주야 탱탱한 면발과 얼큰한 국물에 매진하는 라면 회사의 라면 전문가들이 전하는 비법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프 먼저'다. 전문가들의 조언이 씨알도 안 먹힌다. 매뉴얼의 굴욕이다. 황당한 매뉴얼도 있다.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후쿠시마시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방사능에 지지 않는 몸을 만들자'는 특별 코너를 만들었는데 내용이 가관이다. ①섬유질이나 발효식품 등을 먹고 용변을 잘 본다. ②항산화 비타민 등을 매일 보충하고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다. ③일찍 자고 적당히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말인즉슨,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면 방사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인데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감기나 독감에 적용할 법한 '잘 먹싸놀' 3박자를 방사능에 대입하는 무데뽀라니. 일본을 손가락질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는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는 매뉴얼이 있지 않은가. 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의 우왕좌왕 허둥지둥 갈지자 행보도 보기 민망한데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매뉴얼이 기가 막히다. '낙타와의 밀접한 접촉을 피하라.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나 멸균되지 않은 생낙타유를 먹지 마라'. 국민들의 혈압 상승을 유발하는 분노의 매뉴얼이 민망했던지 유언비어 유포자를 색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정부가 연신 헛다리를 짚는 사이 '대한민국은 낙타가 있는 나라보다 메르스 환자가 더 많은 유일한 나라'의 반열에 올랐다.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또다시 유체이탈 화법을 들려주고.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재난 매뉴얼을 만드니 어쩌니 떠든 게 엊그제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스텝 꼬인' 정부를 망연자실 지켜봐야 하나. 라면 매뉴얼만도 못한 정부 매뉴얼에 또 얼마나 뒷목을 부여잡아야 하나.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신음해야 하나. 그도 저도 안 되면 '무능한 정부에 대처하기' 매뉴얼이라도 속히 나오기를. 1편, 2편, 3편 나오는 족족 '100% 대박'을 확신한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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