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완 한국해양재단 이사장
1996년 5월31일, 그 날 부산항은 참으로 눈부시고 생기가 넘쳤다. 신선대부두를 뜨겁게 달군 5000여 해양인들의 열기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 이날은 바다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정한 '제1회 바다의 날'이 개최된 날로 사회자로 나섰던 필자는 객석을 가득 메운 해양인들의 기대와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부산 앞바다를 비추는 태양만큼이나 강력했던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이 자리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새롭게 전개된 21세기 신 해양질서에 대비하고 종합적인 해양의 이용과 관리, 개발과 보존을 위해 해운항만청과 수산청, 해양경찰청을 통합하여 해양수산부를 발족시킨다"고 전격 발표하였다. 이는 단순히 1개의 정부부처를 신설한다는 선언이 아닌 국가 차원의 해양 전략을 제시하고 해양화의 원대한 미래 비전을 선포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거센 파도와 싸우며 전국의 섬과 바다, 그리고 오대양과 저 멀리 극지에서 각자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왔다. 그 결과 부산항의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1996년 400만TEU에서 2014년 4배 이상이 증가한 1900만TEU로 세계 5위의 위상을 자랑하게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해양강국이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2000달러에서 3만달러를 바라보는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바다에는 항상 큰 시련이 도사리고 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의 원유 유출사고, 2014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건과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해 바다가 두려움과 원성의 대상이 되고 온 국민을 비탄에 빠뜨렸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국가 전체가 반성하고 각성하는 한편 국민 화합과 숭고한 희생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이뤄나가는 한민족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제 다 함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에서 이제 해양의 기적을 일궈내야 한다. 대륙과 해양이 교차하는 한반도에 터를 잡은 우리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무궁무진한 기회의 장이다. 또한 신 해양질서 속에서 바다로의 진출과 개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과제로써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의 생존과 번영이 바다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는 21세기에 우리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 프런티어로써 창조경제 실현의 장이자 국가 발전의 무대가 될 것이다. 세계사를 주도한 패권국가는 모두가 해양국가였음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지난 20년의 공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 세기를 준비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해양문화와 해양정신이 국민문화로 바로 서는 토양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비옥한 토양 위에 정부의 정책과 미래 비전이 밀알이 될 때 진정한 해양강국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해상왕 장보고와 충무공 이순신의 DNA를 물려받은 해양민족이자 오늘날 세계 10대 해양강국이라는 긍지를 되새기고 모든 해양수산인들은 세월호 참사의 자괴감과 죄의식에서 벗어나 우리 후손들 앞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도록 바다를 통해, 미래를 향해 전 세계로 정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제20회 바다의 날 기념식이 세계로의 관문이자 대한민국 경제의 상징인 해양수도 부산에서 29일에 다시 개최된다. 1996년 제1회 바다의 날을 계기로 해양화, 세계화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처럼, 이번 바다의 날이 해양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해양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여 명실상부한 초일류 해양강국의 꿈을 실현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이재완 한국해양재단 이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