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불상·불화…왕실서 민간까지 '佛事' 참여

국립중앙박물관 '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 전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호림박물관 소장

인목대비가 발원해 수종사에 하사한 불상들

정조가 용주사에 하사한 '부모은중경' 경판(목판). 용주사<br />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고려 말 안새한이란 인물은 원나라와 친분이 두터웠던 이다. 그의 후원으로 남겨진 유물에는 경문을 베껴 쓴 사경(寫經)이 있다. 1334년 만들어진 이 사경은 부모의 은혜와 원나라 황제, 황태후, 태자 등의 덕으로 위계 2품을 받은 것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감지 위에 당대 최고 상품이었던 '자마금(紫磨金)으로 화엄경을 옮겨 쓴 것이다. 경문과 함께 그림도 있는데, 보살 앞에 선재동자가 뒷모습을 보이고 꿇어앉아있다. 보살의 얼굴에 보이는 티베트-몽골 불교미술 양식은 발원자가 친원계 인물인 점과 무관하지 않다.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는 조각승 성인에게 지시해 1628년 23구의 불상을 만들었다. 이는 경기도 남양주 수종사 소장품으로, 수종사는 인목대비의 후원이 있던 왕실사찰이다. 여승과 사대부 부녀자들이 자주 왕래했다. 인목대비는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아들 영창대군을 잃고 폐서인(廢庶人)이 돼 서궁에 유폐됐던 이다. 이후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위돼 죽은 사람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자주 불사를 행했다고 한다. 수종사 불상을 조성한 1628년은 역모사건이 있던 해로 왕실이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었다. 불상 조성은 억울하게 희생된 일가족과 자신의 원통함을 풀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식이 부모를 업고 수미산을 백번 천번 돌더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 한없이 큰 부모의 은혜를 강조한 불경(佛經)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그림과 글로 새긴 목판. 조선시대인 1796년 정조의 어명으로 제작돼 용주사에 하사한 유물이다. 백성의 교화를 명분으로 만들었지만,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모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갖는다. 목판 42판은 한문과 한글, 변상도가 앞뒷면에 새겨져 있다. 변상도는 김홍도가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부모은중경'은 중국에서 유교의 효 사상을 수용해 만들어진 위경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왕실을 비롯해 민간에도 널리 간행됐다. 안새한, 인목대비, 정조. 세 인물은 이렇게 사경과 불상과 경판을 제작하게 한 후원자들이다. 이들이 남긴 유물들은 공덕을 베풀어 부처에게 소원을 빌기 위한 '발원(發願)'으로 만들어졌다. 그 속에는 감사와 부모 등 죽은 이를 기리고 극락왕생을 비는 염원이 담겨있다. 사찰을 짓거나 탑을 세우고, 법당에 불상과 불화를 봉안하며, 경전을 간행하는 등 행위 역시 같은 맥락이며, 이를 불사(佛事)라 한다.

영산회상도, 동국대박물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같은 불사 유물 431점을 모아 특별전을 개최한다. '발원, 간절한 바람을 담다'라는 전시다. 이 중 134점이 국보와 보물이고, 시도유형문화재가 3점이다. 또한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는 성보가 7건 77점에 달한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불교미술의 걸작들이 총망라됐다. 전시는 불사를 후원했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다. 불사에 참여한 이들은 왕공귀족, 관료들뿐만이 아니다. 그 예로 승려와 일반인들이 후원자가 돼 제작한 '영산회상도'가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인도 영취산에서 열렸던 석가모니불의 설법모임을 묘사한 것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른 후 사찰 재건이 활발했던 조선 후기 가장 많이 그려진 불화의 주제였다. 신소연 학예연구사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불사를 행하던 정신적·물질적 후원인들에 맞춰 유물을 모았다. 사리와 사리함 등 복장유물, 거란과 몽고 침입을 받은 고려시대 활발했던 경전 관련 유물, 조선시대 불상과 불화, 종, 직물 등이 대거 등장한다"고 했다. 이 중 불상과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불복장(佛腹藏) 유물이다. 발원문, 사리, 경전, 직물, 곡물, 복식 등 다양한 물품이 불상 속에서 발견됐다. 수덕사 소장 '문수사 아미타불 복장물'의 복식과 아름다운 직물, 파계사 원통전의 관음보살상 복장물인 '영조대왕 도포와 발원문' 등이 있다. 23일부터 8월 2일까지. 02-2077-9000.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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