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朴대통령 순방8일 관찰기

신범수 정치경제부 차장

[산티아고=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8일째 취재하고 있다. 그동안 가까이서 박 대통령을 볼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세월호 1주기와 성완종파문 같은 변수가 없었다면 출국 전용기에서 인사하는 것까지 세 번이었겠지만 박 대통령은 기자석에 오지 않았다. 기자들의 민감한 질문이 쏟아질 게 뻔했고 정면승부는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박 대통령은 콜롬비아까지 가는 20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월호 1주기를 피하려고 출국하는 것이란 오해는 매우 억울했을 것이다. 그럴수록 가시적 성과를 보란 듯이 들고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은 박 대통령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말이 좋아 세일즈 외교지 사실 장사하러 가는 길 아닌가. 어떻게 하면 물건을 잘 팔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불법 자금을 받은 총리에 대한 처리방식을 동시에 고민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17일 박 대통령은 산또스 대통령과 공식만찬을 하기로 돼 있었다. 애초 양국 인사 200여명이 참석해 민속공연 등을 관람하는 성대한 연회로 준비됐다. 그런데 이날 오전 콜롬비아 군인이 반군의 공격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양 정상은 공연을 취소하고 참가 인원도 20명으로 최소화했다. 국내 문제에 짓눌린 두 정상의 만찬은 그리 흥겹지 않았을 테지만 박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질문을 산또스 대통령에게 던졌다."콜롬비아 물 문제는 어떤가요." 물이 부족하다면 수자원공사의 물관리 종합대책을 팔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미국보다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한 물부자 나라다. 박 대통령은 산또스 대통령의 물 자랑을 한참 들어야했다. 조금이라도 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함에 참모들 조언도 없이 즉석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물건 보따리를 풀다 민망해진 대통령의 낙심한 표정을 참모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촘촘한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던 20일 박 대통령은 총리의 사의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결정은 과거 문고리 3인방을 처리했던 방식과 대비된다. 박 대통령은 "그들에게 죄가 발견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민심에 맞섰다. 이 총리 역시 수사결과를 기다린 뒤 죄가 발견되면 경질할 수 있는 문제였다. 입장 발표 다음날 리마시청에서 박 대통령을 직접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쉬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민심에 호응한 결정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박 대통령은 밝은 표정을 되찾은 듯했다.이틀 뒤 한ㆍ칠레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한 박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8일이나 계속된 강행군에 박 대통령은 행사 도중 의자에 앉아 깜빡 졸기까지 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경제 성과가 정치 이슈에 매몰돼 버린 상황을 개탄했다. 정치 이슈는 한 순간 지나면 그만이지만 경제는 계속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안 수석은 말했다.그의 간단한 논리를 국민들이 수긍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사실 간단한 것인지 모른다. 문고리 3인방이 아닌 이완구 방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국민도 대통령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심에 맞서지 않는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서지 못할 이유도 없다. 풍성한 경제성과를 들고 환한 표정으로 귀국 전용기에서 세 번째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산티아고(칠레)=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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