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김태곤이 남긴 무속의 세계

관우장군도, 20세기 중반, 황춘성

무속연구가 '김태곤' 수집 유물무신도, 무복, 무구 그리고 방대한 연구 성과들"카오스와 코스모스를 넘나든다"…'아크 패턴' 이론 주창[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촉한의 장수 관우를 수호신으로 그린 '관우장군도(關雲將軍圖)'. 관우장군 부인으로 알려진 신령을 그린 '정전부인도'. 인간의 부귀공명을 도와주는 신령을 그린 '황금역사금이신장도(黃金力士金物神將圖)', 흰머리와 흰 수염을 한 노인이 붉은 색 도포를 입고 호랑이 위에 앉아있는 '산신상(山神像)'. 무당이 자신의 수호신으로 삼는 북두칠성과 일월을 새긴 거울 '명두(明斗)', 시베리아 에벤키 족 샤먼의 50kg이 넘는 무복(巫服)….민속학자 남강(南剛) 김태곤(1936~1996년 전 경희대 교수)이 평생 수집한 무속 관련 유물을 소개하는 특별전시가 서울 경복궁 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김태곤 교수가 1960년대부터 35년간 굿 현장을 꾸준하게 기록하면서 멸실 위기에 수집한 무신도(巫神圖), 무구(巫具), 무복(巫服),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비롯 그의 저작물과 연구 노트 등 300여점이 모였다. 그가 별세한 후 부인 손장연 여사가 지난 2012년 민속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들 중 일부다. 김 교수는 대학시절부터 전국의 굿 현장을 찾았고, 무당들이 무업(巫業)을 그만두면서 소각하거나 땅에 묻는 무신도와 무구를 수집했다. '한국의 무신도(巫神圖)' 등 저서 34권과 '황천무가연구(黃泉巫歌硏究)' 등 논문과 글 200여 편을 남겼다. 그가 석사논문으로 발표한 '황천무가연구'는 망자의 혼을 달래고 보내는 의식을 연구한 내용으로, 당시 크게 각광받았고 학계·종교계에서 초빙돼 강연을 열기도 했다. 그는 몽골·시베리아까지 무속 조사 범위를 확대하면서 비교연구를 시도하던 중 1996년 61세 이른 나이에 작고했다. 김 교수는 원래 인간이 자연과 하나였던 세계를 '카오스'로,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만들어진 인간세계를 '코스모스'로 구분할 수 있지만, 무속에서 알 수 있듯 실상 인간은 살아가면서 카오스와 코스모스 상태를 반복하게 된다는 '아크 패턴(arche-pattern)'이론을 주장한 바 있다. '모든 존재는 미분성(未分性)을 바탕으로 순환하면서 영구히 지속한다'는 뜻이다.

명두, 20세기 초

시베리아 에벤키 족 샤먼 무복, 20세기,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소장

김태곤의 미발표 육필원고, '한국민속과 북방대륙민속의 친연성' 1996년.

이번 전시는 우선 김태곤 교수가 고등학생 시절 인천신보에서 입선한 '오후의 기도'라는 시로 시작된다. 그가 문학도에서 민속학자로 무속을 연구하게 된 이유에는 우리 서사시에 담긴 무가(巫歌)를 만나며 한국 정신문화와 무속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1991년 당시 TV프로그램 '11시에 만납시다'에 등장한 김 교수는 동해안 별신굿을 언급하며,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의미로 '심청굿' 대목이 열리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도 했다. 오랫동안 전래된 이야기가 우리 굿판에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충남 서산 출생인 그가 1986년에 펴낸 '서산 지역 민속지'도 전시장에 비치돼 있다. 지금이야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조사해 지역민속 관련 저작들이 많이 나온다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시도였고, 꽤 주목을 받았던 내용이다. 그의 조사 노트와 사진, 영상 기록에는 '남이장군사당제(南怡將軍祠堂祭)' 관련 내용이 있다. 특히 남이장군 사당제는 1972년을 끝으로 중단됐는데 당시 김태곤이 촬영한 영상과 사진자료는 1983년 남이장군사당제를 복원하면서 고증 자료로 쓰였고, 1999년 이 제의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는 데 기초자료가 됐다. 무신도와 무복, 무구도 눈길을 끈다. 특히 무신도들은 좀처럼 제작자를 알수 없는데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관운장군도’, ‘정전부인도’, ‘황금역사금이신장도’의 뒷면에는 ‘황춘성 그림’이라는 화가의 이름이 적혀있다. 제작자는 굿을 행한 무녀를 돕는 남자, '무부'(巫夫)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명두 중에는 북두칠성을 별(☆)이 아닌 원(○)으로 표시돼 있는 것도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이후 서양 표기 방식이 일반화되기 전에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몽골과 시베리아 등을 찾아 연구한 흔적을 알 수 있는 유물과 자료도 있다. '시베리아 무복'(경희대학교중앙박물관 소장)과 미발표 육필원고인 '한국민속과 북방대륙민속의 친연성(親緣性)' 등이다. 이번 전시는 김 교수가 수집한 '삼국지연의도' 네 점도 함께 선을 보인다. 특히 이 그림들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거한수조운구황충'(據漢水趙雲救黃忠; 조운이 한수에서 황충을 구하다)는 노르베르트 베버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1923년) 도판과 같고, '장장군대료장판교'(張將軍大鬧長板橋; 장비가 장판교에서 조조 군사를 꾸짖다)는 안드레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1929년) 도판과 동일한 점이 밝혀졌다. 또 그림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제천지도원결의'(祭天地桃園結義; 유비·관우·장비가 천지에 제사지내고 도원결의를 하다)'와 '장장군의석엄안(張將軍義釋嚴顔; 장비가 엄안을 의기롭게 풀어주다)'은 동일 계열로 추정돼 4점이 모두 동관왕묘 그림임이 분명해졌다. 장장식 학예연구관은 "기록으로만 남을 뻔한 그림이 수집돼 기증과 보존처리를 통해 그 존재를 밝혀내고, 이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이번 전시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라고 말했다. 6월 22일까지. 02-3704-3114.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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