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의 축구 철학 K리그에 녹여
수원, 슈퍼매치서 서울 완파
서정원 감독(오른쪽)이 2012년 12월 수원 삼성 사령탑에 내정된 뒤 은사인 크라머 감독을 만나기 위해 독일 뮌헨을 찾았다. [사진=수원삼성블루윙즈 제공]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부임 3년차. '서정원 표' 축구가 서서히 수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연함, 공감, 기술에 대한 신뢰. 그 깊은 곳에는 세계 축구사의 큰 이름, 데트마어 크라머(Dettmar Cramer·90)가 있다.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서정원 감독(45)은 지난 18일 '빅버드'에서 열린 FC서울과의 시즌 첫 '슈퍼매치'에서 5-1로 크게 이겼다. 수원은 4승2무1패(승점 14)로 전북(6승1무 승점 19)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주목하는 라이벌전에서 승리한 수원은 뜨거웠다. 홈 관중 2만6250명은 좀처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서 감독은 옛 스승을 떠올리며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큰 경기를 앞둘 때마다 서 감독은 "스승이라면 이때 어떤 결정을 할까"하고 자문해본다. 서 감독은 수원 감독이 되자마자 독일로 날아가 뮌헨 근처에 있는 크라머 감독의 집을 방문했다. 2012년 12월 23일의 일이다. 제자의 얼굴을 확인한 스승은 '선수와의 교감'을 당부했다. 서정원 축구가 길을 정한 순간이다. 크라머 감독은 1990년 11월 21일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기술고문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사실상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하는 23세 이하 대표팀의 총감독이었다. 그는 뮌헨 사령탑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유러피언컵에서 두 차례(1975, 1976년) 우승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1968년 일본을 멕시코시티올림픽 동메달로 이끌었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었다. 서 감독은 이듬해 1월 7일 입국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들은 충고를 잊지 않는다. "너는 더 큰 선수가 될 것이다. 자신을 믿어라."
서정원 수원 감독(오른쪽)과 주장 염기훈[사진=김현민 기자]
서정원 감독은 선수의 장점을 먼저 찾아내고 부족한 부분을 메울 해법을 제시하며 "다시 해보자"고 동기를 부여하는 크라머의 리더십에 매료됐다. 서 감독 뿐 아니었다. 바르셀로나 행 티켓을 따냈을 때 우리 선수들은 모두 크라머 감독에게 달려가 안겼다. 국내 감독과 코치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알고 있었다. 크라머 감독이 한국을 떠날 때 서 감독은 공항까지 나가 배웅했다. '크라머 축구'는 서정원 감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서 감독은 유연하지만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가 가장 공들인 전술은 빠른 패스와 전방 압박을 통한 세밀한 경기 운영. 낮고 빠른 패스를 통해 조직적으로 공격을 전개하는데 중점을 둔다. 롱패스나 의미 없이 문전으로 띄우는 크로스는 금지했다. 물론 수원 선수들은 감독이 왜 그런 축구를 하려는지 이해한다. 구단에서는 그의 지도력을 인정해 올해 말로 끝나는 계약을 2017년까지 3년 연장했다.옛 스승에 대해 추억하는 서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지난 4일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크라머 감독은 건강이 좋지 않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위독하다는 소식도 들려 서 감독은 마음이 아프다. "아직 축하 인사도 못 드렸는데 걱정스럽다. 꼭 쾌차하셔서 더 조언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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