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봄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겨울부터 이어진 긴 가뭄 끝에 내린 단비였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에 한숨 쉬던 농민뿐 아니라 황사와 미세먼지에 고통받던 도시민까지 반긴 비였다. 그야말로 때맞춰 내린 비, '급시우(及時雨)'였다. 급시우는 중국 4대 소설로 꼽히는 '수호지'에서 나온 말이다. 양산박 108두령 중 대두령인 송강(宋江)의 별호다. 송강은 까무잡잡한 얼굴에 왜소한 체격으로 외모는 볼품이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 기준으론 '루저'에 속한다.(여기에 속하지 않을 대한민국 남자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지만….) 지위도 높지 않았다. 양산박에 합류하기 전 송강은 제주 운성현의 압사라는 하급관리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 관아의 '아전' 정도였다. (이방 정도 됐을까?) 볼품 없는 외모에 지위도 높지 않았지만 양산박의 영웅호걸들은 모두 송강을 형님으로 모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송강보다 뛰어난 학식과 지모를 가진 이, 출중한 무예를 가진 이들이 진심으로 윗사람으로 모셨다. 명문 거족의 후예와 그보다 높은 관직에 있었던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송강이 난다 긴다 하는 영웅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섬기는 리더십 덕분이었다. 송강이 유명세를 탄 것은 지방의 하급관리 시절, 어려운 이들을 보면 자기 재산까지 털어 도와주면서 급시우란 별호를 얻으면서다. 이후 양산박의 형제들과 인연을 맺을 때도 자신보다 형제들의 안위를 더 걱정했다. 이런 마음과 행동이 개성 강한 영웅호걸들을 아우르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리더'에 대한 담론이 끊이질 않고 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서민들은 살기 어렵다고 난리인 데 이를 해결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안 와 논이 쩍쩍 갈라지는데 물을 너무 퍼주면 저수지가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분들, 내년 모종을 할 씨앗은 무상으로 주느냐, 유상으로 주느냐 갑론을박만 몇 년째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정치뿐 아니다. 개별 회사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들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겠다며 긴축만 내세우다 보니 구조조정의 칼날만 난무한다. 자고 나면 어디서 몇 명이 희망퇴직을 했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비가 적당히 오면 사람들은 비를 기다리지 않는다. 가뭄이 길어져야 비를 기다린다. 요즘은 급시우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진 듯 하다.전필수 증권부장 philsu@<ⓒ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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