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은 관리의 청렴을 법으로 정해 엄하게 규제하려 한다. 많은 이들이, 이 법이 일상적인 업무마저 어렵게 하는 '지나친 법'이 될 거라고 우려한다. 일상에 보편화된 금품과 향응의 관행이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퇴계는 벼슬하는 맏아들 준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아들이 맡은 관직을 냉관(冷官)이라 불렀다. 냉관은 지위가 낮고 보잘 것 없는 벼슬을 가리키지만, 그런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 관직이 지녀야할 차가움같은 것을 함의한 것이다. 퇴계는 냉관을 맡은 자로서, 깨끗하고 조용하며 또 고생스러움을 각오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서는 안될 일을 하게 될 경우가 있으니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고 말한다.퇴계법은 김영란법보다 훨씬 엄격하며, 오가는 물건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살피는데 치중한다. 현감이 된 퇴계의 아들 준이 은어 몇 마리를 보냈다. 작은 음식물 정도는 선물로 보내도 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기에,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퇴계의 답장이 왔다. "그 지방에서는 은어를 잡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는 줄 안다. 대체 이 은어는 어디에서 생긴 것이냐? 필경 아비를 위해서 하인들을 괴롭힌 결과가 아니더냐. 봉화 고을이 나의 입과 배까지 더럽히려 하는구나." 편지와 함께 은어도 봉화로 돌아갔다.퇴계가 돌아가던 해인 1570년, 아들은 봉화의 감 한 접을 보냈다. 퇴계의 답장은 이렇다. "벼슬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접근하는 법이다. 다른 때보다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관물을 인정 쓰는데 써버리는 것은 국가에 죄를 짓는 일이 아니냐? 봉화에서 보낸 이 감은 대체 누가 갖다준 것이더냐?" 그리고 관에서 쓸 곳에 쓰라며 퇴계는 감을 돌려보냈다. 조카 사위 신섬도 벼슬을 하면서 몇 가지 선물을 보냈다. 퇴계의 답장이 왔다. "지난 번에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번에 또 물건을 보냈구나. 자네 비록 내 말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의정이 내린 관가의 영(令)을 어찌 어기는가." 퇴계는 받지 않아야할 품목을 가려 돌려보냈다.퇴계의 금품수수법은 이렇다."첫째, 이름 없는 물건과 출처가 불분명한 것은 사양해야 한다. 아들이 안기찰방으로 있을 때 꿩 한 마리를 보냈다. 이건 이름이 없으며 출처도 불분명했기에 돌려보냈다. 둘째, 남에게서 물건을 받은 뒤 그 물건에 대해 답례로 갚지 못할 것은 받아서는 아니된다. 셋째, 부탁이 있어서 주는 물건은 받아서는 아니된다. 그런 물건은 뇌물이다. 물건을 받으면 일을 교란시키고 사리판단이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퇴계는 국왕이 하사하는 물건이라도 책 이외에는 받지 않았다. 가죽옷이나 향 같은 것은 받고 나서 반환했다. 퇴계가 물건을 받은 때는 그 물건의 성의와 수고에 대해 철저히 답례를 했다.퇴계의 냉관법은 금품과 향응이 만연한 사회에선, 지나친 결벽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금품 자체가 아니라, 금품이 지닌 뜻에 대해 엄격하고 그것이 업무를 타락시키고 왜곡시키는 것을 경계한 점이다. 이걸 놓치고 금품만 주목하는 것은, '정신'을 수습해야할 것을, '물건'의 문제로 읽는 어리석음이 아닌가.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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