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잠 못 이루는 사회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새해 목표는 잠을 많이 자는 것이다. 이제 고3이 되는 딸이나, 늦도록 환한 불빛 아래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 해뜨기 한참 전부터 어둠을 가르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처럼 구조적으로 잠을 제대로 잠자기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많지만.  잠을 많이 자려면 일단 미리 미리 일을 해두어야 한다. 일이 마지막에 몰리면 당연히 밤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길 때 또 밤샘을 해서 끝내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니 늑장부리게 된다. 잠을 많이 자려면 잘 먹어야 한다. 배가 고프거나 속이 불편하면 제대로 잘 수 없다. 최근 실수로 항생제를 먹고 그대로 잤다가 식도 염증으로 잠자리를 며칠 설쳤다. 잠을 많이 자려면 기분이 좋아야 한다. 예전에는 한 번 누우면 몇 시간이고 쭉 잤는데 요새는 나이를 먹어가는지 아무리 피곤해도 3~4시간만 자면 일단 잠에서 깬다. 요컨대 잠을 많이 자려면 심신이 다 건강해야 한다는 뜻이다.  작년 여름 '불면 코리아' '워커홀릭 한국' 등 제목으로 화제가 된 통계가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이 가장 짧다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였다. 조사대상 18개국 중 한국은 평균 수면 시간이 7시간49분이었고 수면 시간이 가장 긴 프랑스는 우리보다 무려 1시간이나 더 많은 8시간50분이었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적정 수면량이 다르다, 한국 직장문화에서 7시간49분도 긴 편 아니냐 등 다양한 반응이 나왔지만 정작 왜 이런 통계가 중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던 듯하다.  개인적 차원에서 수면 부족이 얼마나 해로운지는 잘 알려져 있다. 신체적 건강과 관련해서는 국내외 수많은 연구팀들이 수면 부족이 심장병, 당뇨병, 비만, 고혈압, 대장암, 야뇨증 등 별의별 질병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정신적 건강에서도 수면 부족은 우울증, 자살 충동, 집중력ㆍ주의력 저하 등 심각한 위험을 수반한다.  개인 수준의 상관성이 집단 수준의 상관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나 최단 수면 시간 통계와 쌍두마차를 이루는 비교국가 통계를 살펴보면 집단적 수면 부족에 연관되는 집단적 위험이 짐작된다. 먼저 한국인의 평균 노동 시간은 2000년에서 2008년까지 OECD 국가 중 내내 1위를 기록하다 2008년부터 멕시코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률(2013년 인구 10만명당 28.5명)은 OECD만이 아니라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부동의 1위로 인구 10만명당 80.3명, OECD 평균의 4배를 넘는다.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미국 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비교대상 224개국 중 우리보다 출산율이 낮은 곳은 싱가포르, 마카오, 대만, 홍콩뿐이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통계의 기초이지만 인과관계는 상관관계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상관관계는 중요하다. 1950년대 중반 소위 '꿈 수면'이라고도 하는 렘(REM) 수면의 발견으로 수면 주기와 꿈에 대한 신경과학적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를 통해 과학자나 예술가들이 꿈에서 새로운 영감과 통찰을 얻은 사례들이 과학적 근거를 얻게 되었다. 수면과 꿈, 창의성에 대한 연구는 현재 뇌과학 연구에서 가장 활발한 분야이기도 하다. 사람이 잠을 자면 꿈을 꾸듯이 사회가 잠을 제대로 잘 때 꿈도 제대로 꿀 수 있지 않을까.  2007년부터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서 발표하고 있는 세계혁신지수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하게 나타난 부분은 무형 자산, 창조적 상품 및 서비스, 온라인 창조성 등 창조적 성과 항목에 해당하는 지표들이다. 이쯤 되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사회가 집단적 창의성도 떨어지는 것은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가 아닐까 싶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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