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정기자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슬럼프 없는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하하"
모처럼 발랄한 골프선수를 만났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겠다', '이겨야 한다'는 비장함 따위는 없다. "즐기는 골프를 추구하겠다"는 이미향(21ㆍ볼빅)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데뷔 2년 차, 지난달 미즈노클래식에서 드디어 첫 우승을 일궈내 팬들의 시야에 들어섰다. 지난 12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의 격전지 중국 선전 미션힐스골프장에서 이미향을 만났다.
▲ "치즈버거가 만든 골프인생"= 불과 3살의 나이에 골프채를 잡았다. 처음에는 물론 부모와 함께 즐기기 위한 취미였다. 가족과 함께 호주 시드니로 자주 여행을 다니면서 골프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외동딸이라 부모님이 음식 제약을 많이 했다"며 "시드니의 맥도널드 치즈버거가 너무 맛있었는데 아무리 먹고 싶어도 절대 사주시지 않다가 골프를 치고 나면 꼭 버거를 사줬다"고 했다.
4살 때의 기억이 이어졌다. 어린 마음에 '골프를 치면 버거를 먹을 수 있구나'라는 계산이 결국 운명을 바꿨다. 주니어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될 정도로 재능은 탁월했다. 함평골프고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내 무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미국으로 진출했다는 대목이 이채다. 주위의 조언도 있었지만 "큰물에서 놀겠다"는 스스로의 도전 의지가 강했다.
▲ "짧지만 굵은 LPGA투어 성공기"= 2011년 퀄리파잉(Q)스쿨에서 조건부 시드를 받아 2012년에는 2부 투어를 병행했고, 1승을 앞세워 상금랭킹 6위 자격으로 딱 1년 만에 정규투어에 진출했다. 여기서부터 가시밭길이다. 줄줄이 '컷 오프'를 당하면서 경비를 아끼기 위해 자동차로 장거리 투어를 소화했고, 주최 측이 제공하는 하우징(무료 숙박)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행히 1년 만에 적응을 끝냈다. 올해 초 유럽여자프로골프(LET) 한다뉴질랜드여자오픈 우승 당시 리디아 고(뉴질랜드)를 격침시켜 분위기를 바꿨다. 이미향 역시 "LET 우승으로 내 골프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며 "똑같은 기술로서도 골프가 180도 달라졌다"고 소개했다. 실제 하반기에는 LPGA투어에서 세 차례나 '톱 10'에 진입해 가능성을 과시했다.
▲ "피말리는 연장전, 그리고 생애 첫 우승"= 일본에서 기회가 왔다. 바로 LPGA투어 아시안스윙 가운데 하나로 치러진 미즈노클래식이다. 3명이 혈투를 벌인, 그것도 무려 다섯 번째 홀에서 '우승버디'를 솎아냈다.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는 이미향은 "오히려 생각보다 첫 우승을 빨리 일궈낸 셈"이라며 "일본 코스에서는 특히 퍼팅 등 그린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환호했다.
이 우승 직후 연일 인터뷰와 화보 촬영이 이어지는 등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우승 보너스도 두둑이 받았다"는 이미향은 소속사인 국산골프공 생산업체 문경안 볼빅 회장에 대한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빠처럼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분"이라며 "지난해 출시한 화이트칼라 골프공은 투어에서도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고 홍보에 앞장섰다.
다음 목표는 미국 본토 우승, 그 다음은 메이저대회다. 일단 손목부상이 걸림돌이다. 2년 전에 다친 손목이 올해 4월 재발했다. 7, 8월에는 진통제를 먹고 경기하는 날이 잦았고 기권한 적도 있다. 동계훈련보다 약물치료와 재활, 충분한 휴식을 통한 에너지 충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이미향이 "골프를 시작해 슬럼프를 겪은 적이 없다"며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는 바람을 곁들였다.
손은정 기자 ejs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