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지난 주말부터 어제까지 난생 처음으로 동남아에 있는 나라엘 다녀왔다. 그곳의 거리에서 만난 풍경은 한국보다 경제적 수준이 떨어진 많은 나라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인식처럼 우리의 몇십 년 전과 여러 모로 비슷했다. 매연을 내뿜는 낡은 자동차들, 더워서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웃통을 벗고 맨발 차림으로 거리를 다니는 사내와 아이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자집들. 그곳에서 사는 한국인들은 우리의 1970년대를 보는 것 같다고들 했다. 그 말처럼 분명히 한국의 '과거'가 거기에 있었다. 또 하나의 풍경이 있었다. 지인의 딸이 다니는 그곳 사립학교에 가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을 태우고 온 승용차들이 교문 앞 편도 7차로의 절반가량을 뒤덮은 모습이었다. 2500명이 다니는 학교에 2000대의 차가 날마다 그렇게 뒤엉켜 '등교전쟁'을 치른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앞으로 이 나라의 지도층이 될 귀한 자녀들에게 '스쿨버스 따위'를 태워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고 한다. 게다가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 옆에는 거의 예외 없이 도우미가 아이의 가방을 교문까지 들어다 준다. 그리고 아이들은 경비원들이 총을 들고 서 있는 교문을 지나 학교로 들어간다. 허름한 행색의 거리의 사람들과 대비되는 고급스러운 옷차림의 학생들은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요새'와도 같은 학교로 들어가 안전하게 수업을 받고 있었다. 총을 든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학교는 이방인의 눈에 생경했지만 그러나 경비원이 총을 들고 입구를 지키는 모습은 이 나라 어디에나 있었다. 중산층 이상이 사는 빌라촌 출입문에, 대형 쇼핑몰 입구에, 대학교 정문 앞에는 한곁같이 무장 경비원들이 '성(城)'을 지키고 있었다. '하인'들이 주인을 위해 가방을 들어주는 모습, 철통같이 성을 지키는 그 모습은 우리에게 1970년대보다 더 먼 과거의 풍경이었다. 우리가 진작에 떠나왔다고 생각하는 먼 옛날이었다. 그러나 그건 또한 미래의 모습, 아니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우리 사회에 나타날 수도 있는 미래상의 한 단면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성 안'과 '성 밖' 간에 놓인 장벽과 단절의 풍경이었다. 눈에 보이는 성문은 없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성벽이 세워지고, 성의 안과 밖이 서로를 '게토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앞으로 펼쳐질 수도 있는 미래, '오래된 미래'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과거를 본 곳에서 우리의 우울한 미래를 슬쩍 봤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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