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요우커]7. '하루 13시간 운전에 딱지까지 날라오지, 죽겠소'

아시아경제 빅시리즈 #7. '요우커의 발' 버스기사의 하루

저가 여행상품 때문에 운전기사들 곤욕 밤 11시까지 대기하며 노동강도만 더 세져 하루종일 단속요원과 숨바꼭질, 가는 곳마다 만차 스트레스

지난 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관광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최우창 기자 smicer@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저가 여행 상품 자체가 문제덩어리죠.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도 저희한테는 이로울 게 없어요."지난달 15일 서울 신촌역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에서 만난 이모(56)씨. 그는 서울의 한 중소 전세버스 업체 소속 운전기사다. 원래 초등학교 스쿨버스를 몰았다는 이씨는 통학용으로 쓰던 노란색 버스를 관광용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요우커 특수'를 맞은 면세점, 유통시장과는 사뭇 달랐다. 이전보다 업무 시간이 늘고 노동 강도도 더 세졌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13~14시간 운전대를 잡는다. 주 90시간 운전할 때도 있단다. 그렇지만 월급은 150만원대로 예전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버스 안에 있던 요우커 30여명이 우르르 내린 후에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근로기준법 위반이죠. 다 저가 상품 때문이에요."◆월평균 129만원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운전"= 이씨는 "어제 인천 호텔에 오후 10시30분에 내려다놓고 오늘도 여행사에서 새벽에 나오라고 해서 꼼짝없이 오전 6시에 일어나 출근했다"고 했다. 4박5일 일정 중 3일째인 이날은 요우커들의 숙소가 있는 인천에서 파주 프로방스, 소공동 롯데면세점 등으로 동선이 짜여져 있었다. 이날도 일정이 모두 끝나고 관광객들을 숙소에 데려다주고 나면 오후 9시가 훌쩍 넘을 거라고 했다.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휴대폰으로 관광객들이 점심 먹을 장소를 직접 예약하는 등 분주했다. 통학버스를 몰던 때는 등ㆍ하교 시간 사이에 쉴 수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가을철이 되니까 요우커만 아니라 국내 여행객들도 넘쳐나는 바람에 부를 수 있는 차량은 다 불러서 쓰고 있는 것"이라며 "한 달 내내 쉬는 날이 없을 정도"라고 토로했다."동대문에 가보면 쇼핑하는 요우커들 기다리느라 밤 11시까지 대기하고 있는 버스기사들도 많아요. 관광객들을 위한 쇼나 행사가 밤늦게 끝나면 자정까지 운전해야 할 때도 있고요. 업무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요."높은 근무강도 외에도 이씨를 괴롭히는 게 또 있다. 명동, 경복궁, 남산 등 서울 일대만 도는 저가 관광 상품을 맡다 보니 말 못 할 고충도 많다고 했다. 그는 "여행사는 관광객들이 5000~60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한 식당만 찾아 간다"면서 "식재료 원산지도 모조리 중국산인 데다 중국인 입맛에 맞게 기름기 많은 음식들이라 가끔 '꿀꿀이죽'을 먹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속초, 전주 등 지방으로 나가면 그 지역 특산물이 나오는 식사라도 할 수 있고 수당도 있는데 저가 관광 상품이 판을 치다 보니 이마저도 받지 못해 손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3년 말 등록된 전세버스 업체는 1726개, 버스는 4만2597대였다. 기사들의 평균 월급여는 129만원. 또 전세버스의 평균 가동률은 61.9%에 불과했다. 전세버스 업체와 차량이 시장에 과잉 공급되고 버스기사들의 저임금 문제가 계속되면서 국토부는 지난 6일 전세버스(관광버스) 체질 개선안을 발표했다. 오는 12월부터 2년 동안 신규 업체 등록과 기존 업체의 증차를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국토부 관계자는 "업체 간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계속되면서 버스기사들의 처우가 악화된 것"이라며 "이번에 전세버스시장에 신규 업체의 진입을 제한하자 업계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토부 관계자는 "관광철에 수요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최대 성수기에도 전세버스 가동률이 8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비수기 때는 일이 없거나 단가가 낮은 일을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법주차 과태료 월 25만원…주차난 골치= 지난달 27일 충무로역 근처. 남산 한옥마을을 구경 중인 중국인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관광버스 기사 노모(65)씨는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주차문제만이라도 해결되면 원이 없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불법주정차 딱지를 떼일까봐 운전석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노씨와 함께 줄지어 서 있는 대여섯 대의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주차할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대놓고 있는 기사들이 버스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노씨는 "단속요원이 뜨면 버스를 빼야 하지만 딱히 갈 데도 없어 주변 도로를 한 바퀴 빙빙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오는 숨바꼭질이 계속된다"고 전했다."스트레스죠. 하루에도 여러 번 불법주차 딱지를 떼여요. 요즘엔 단속요원이 아니라 이동 카메라로 몰래 찍고 가버리니까 더 답답할 노릇이죠. 사람이 딱지를 끊으면 사정을 얘기라도 할 수 있는데…. 외국인관광객이 연간 1000만명이 온다는 시대에 이렇게 난리가 나는데, 앞으로는 더하겠죠."단속요원이 뜨면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는 "남산 국립극장 주차장에서 1시간 무료주차를 할 수 있지만 공연이나 행사가 있으면 가로막는다. 경복궁, 청와대, 남산도 가보지만 만차라서 더 이상 못 받는다고 하지, 도망간다고 해도 갈 데가 어디 있겠나. 어디 있든 10~15분을 못 넘긴다"고 답했다.관광버스 불법주정차 과태료는 5만원인데, 업체마다 다르지만 버스기사가 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씨는 한 달 평균 25만원의 벌금을 본인이 부담한다. 서울 시내 몇몇 면세점들은 주차장 부족 문제로 불만을 제기하는 버스기사들을 달래기 위해 고육지책까지 내놓았다. 복수의 버스기사들은 "신라면세점은 관광버스 기사들이 불법주차 딱지를 가져가 보여주면 과태료를 대신 내주고, 동화면세점은 기사들에게 상품권을 쥐여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지난달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만난 관광버스 기사 서모(62)씨. 백화점 주차장에 차량을 세우려고 하자 주차요원은 양팔을 들어 올려 X자를 만들며 '만차'라는 신호를 보냈다. 서씨는 "저렇게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하니 속이 끓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시에서 관광지 근처에 주차장소를 여러 개 만들기는 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10년 경력의 서씨는 "쫓겨나고 도망가는 일이 반복되는 일상에 신물이 났다"면서 "주차난이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푸대접을 받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관광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최우창 기자 smicer@

◆고질적인 관광버스 주차문제 해결해야= 버스기사 서씨는 "불법주차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며 "주차비를 내기 싫다는 것도 아니고 돈 내도 괜찮으니까 주차할 곳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버스기사들의 최대 골칫거리라는 주차난은 수년 전부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차장을 신설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지만 예산 문제를 비롯해 부지를 확보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서울시 관계자는 "교통소통에 문제가 되지 않는 노상에서 시간제로 주차를 허용하는 구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시는 장기적으로 2018년까지 11개 지역에 관광버스 356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공간을 추가로 늘릴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근 주차장에 빈자리가 있음에도 편의를 위해 관광지 주변에 주차하도록 가이드가 종용하기도 한다고 들었다"며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 달 가이드와 버스기사들을 상대로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여행객들이 몰리는 해외의 유명 관광지는 주차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하나투어 관계자는 "이탈리아 로마의 경우 대형버스가 아예 도시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정을 정해놓고 있다"며 "대형버스는 도시 외곽에 주차해놓고 여행객들은 7인승 차량으로 갈아타는 '벤츠투어'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선진국은 관광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버스를 주차한 후 가이드가 전화를 하면 태우러 오는 방식을 쓰고 있고, 주차난이 심한 관광지는 대형버스 통행료를 물어 진입 차량 수를 조절하기도 한다.D여행사 업체 관계자는 "요우커 모시기에 열을 올리면서도 주차할 곳이 없어 과태료를 무는 건 정책과 법, 현실이 제각각인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정부가 1년에 며칠은 주정차 단속을 유예해주는 바우처를 판매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기획취재팀>취재=김보경ㆍ김민영ㆍ주상돈 기자 bkly477@사진=최우창 기자 smicer@통역=최정화ㆍ옌츠리무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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